장영미 하브루타 강사의 책읽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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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미 하브루타 강사의 책읽수다

루비 0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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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수필



세번째 >> 프레드릭  


사람은 누구나 재능 하나씩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다행히 신께서는 

내게도 재능 하나를 주셨다.‘말 잘하는 것딱 그거 하나 주셨다

목소리가 참 좋다는 말 뒤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말,‘노래도 잘하겠네.’

이 목소리에 노래까지 잘하면 반칙이죠.” 너스레를 떨지만,

입에 재능을 심어 주시면서 덤으로 노래 실력도 좀 주시지.’아쉬운 건 사실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야무지고 당당하고 똑부러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조금 가까워지면 허당끼가 있네. 보기랑 다르네.’라는 말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라 표현한다면 최측근이다.

특히 몸으로 하는 일은 뭔가 어설프다. 눈으로 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을 하며 완벽하게 준비하지만 막상 실제로 하면 

엉망이다. 게다가 온 몸에 힘이라고 찾아볼 수가 없어 짐을 나르거나 힘을 써야 

할 때, 한다고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가 팔다리가 장식용이라...”


아줌마들이 모이면 니집내집 할 것 없이 부엌일을 한다. 하지만 난 우리집이 

아닌 이상 손님처럼 앉아 있다. 거든답시고 움직이면 걸리적 거린다고 가만히 

앉아있으란다.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손이 느려서 언제 끝내겠냐고 또 쫓겨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눈썰미, 일머리도 없다.나 같은 사람이 눈썰미가 있었다면 

머리를 못 따라가는 몸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질까? 어쩌면 자괴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일하기 싫어 꾀 부리는거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미리 얘기 한다. 일머리가 없어 

일을 찾아서 하진 못하지만 시키는 건 잘한다고. 대신, 시킬 때 하나부터 열까지 

잘 설명해 줘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를 찾는다. 나와 함께 하길 원한다. 왜일까?


언제가 그림책 모임에서 프레드릭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미와 베짱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 다른 들쥐들이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부지런히 움직이며 먹을 것을 준비할 때 프레드릭은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겨울을 준비하지만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길고 지루한 겨울, 들쥐들은 

프레드릭에게 그동안 모은 양식들에 대해 묻는다. 쓸데없어 보이던 햇살, 색깔

이야기가 마법처럼 무료한 삶에 활기를 불러 넣어 주었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고,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프레드릭하고 외치는 바람에 한바탕 웃었다.

 

그림책 프레드릭은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 열심히 일해 모아 놓은 

개미들의 양식도 소중하지만 긴 겨울을 이겨내게 해주는 베짱이의 노래와 춤도 

가치 있는 자산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모두가 행복하고

공동체를 더욱 크고 풍성하게 해준다.


신은 나에게 말 잘하는 능력을 주셨다. (여전히 노래 실력을 주지 않으신 것이 

아쉽지만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내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 인사를, 아파하는 사람의 상처는 보듬어 주고, 용기가 필요하다면 

우주의 기운을 모아 힘을 불어 넣어 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와 있으면 편안하고 

유쾌하다고. 그것이 사람들이 나를 찾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우리는 김밥 속 재료다. 각 재료의 가격은 달라도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이룬다. 어묵에게 고기 맛을 내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당근이 단무지 맛을 

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색과 맛을 내며 자리를 지키면 된다.

시금치면 어떻고, 단무지면 어떠한가.   

내가 있기에 세상이 완성된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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