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이후의 김두기 시인을 예찬합니다 -讀者 오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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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이후의 김두기 시인을 예찬합니다 -讀者 오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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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중근 사진가 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4편

1.

잔주름 속에서 아내의 고단함이

세월의 추같이 매달려 힘든 날들을 애써 숨기고 있다

사랑의 열정 지나간 자리에 고단함을 메우고 있는 듯

일용직 남편에게 잠시 미소를 보이며

거칠어진 손을 감추려 한다

부부의 인연 속에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본 눈빛

침까지 흘리고 자는 그녀의 볼을 살짝 닦아주자

아내는 오랫동안 악몽을 꾼 듯 내 손을 꼭 잡고

다시 잠을 잔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만나고

실망을 만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눈뜨면 날 바라 볼 것이다

난 늘 물을 채워주지 못하는 빈 항아리였다

내 사랑은 그녀의 얼굴과 닮아 가면서

거친 바람을 막아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눈을 뜨고 일하러 갈 때

거칠어진 손으로 아내는

어느 부잣집 파출부로 갈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하루를 이겨내다가

썰렁한 냄새가 춤추는 사글세 집으로 들어서면

서로 밥 한 술 먹고

허전해진 사람으로 차가운 방바닥 위를 따스하게

보듬고 서로의 얼굴을 만지며 잠들어간다

- 김두기 詩, <얼굴>


2.

좌판을 펼쳐놓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는 동안

거친 파도의 비명소리가 일었다

잔잔하고 평온한 섬은 보이지 않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단단했던

눈빛은 어느새 지쳐 늘어져가고 있었지

총각 때 꼬드김으로 감언이설 했던

그 말들은 어디론가 숨어 버렸고 저 파도 소리들

뽀얀 소금꽃을 가슴에 피우면서

지금의 날들을 넘고 넘어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좌판 위에 하루를 진열해 놓고

노 저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자처럼 자꾸 불어나는 삶의 무게는

전세방 한 칸 마련할 뱃머리도 없이

좌초의 위기 앞에서 겨우 둥둥 떠간다

그리운 섬은 멀어지는 꿈처럼

파도의 고달픔 외치다가 저녁 한 술 먹고

서로의 품에 안겨 잠들곤 한다

좌판으로 펼친 하루 속엔 절박한 아내의 노래가

악보도 없이 불러지고 있다

오백 원, 천 원들이 아내의 섬을 잊지 않고

골목 입구 앞을 지키고 있는데,

-김두기 詩, <아내의 섬>


3.

눈을 뜨면 깨어진 빈 항아리 같은 내 가슴을 봅니다

새어나오는 안타까움은

내가 한평생을 같이한 당신의 눈물이라는 것을

은근하게 내 가슴을 적실 때

더욱더 내 가슴의 슬픈 항아리가 만져 집니다

따스한 물을 가득 채우 쥐라고

잘 닦아 반질반질하게 빛나게 해주겠다고

슬픔의 눈물이 새어 나오게 하지 않겠노라고

뜨겁게 약속했는데

내 투박한 손은 점점 굳은 살이 박혀

당신의 느낌을 점점 모른 체하며

나의 손바닥만 보고 있습니다

미움은 결코 아닌데,

어느새 미움 같은 사랑이

절박하게 날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람 속에 묻혀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동안

항아리는 이름 없는 틈 하나로

내 마음에 자리잡았습니다

이제 성한 곳보다 틈이 난 그곳의 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리임을

당신의 그림자를 보고 알았습니다.

-김두기 詩 <항아리>


4.

월급날, 오늘따라 저 볼멘소리

눈 흘기는 소리조차 칙 칙

이리 저리 새는 숨결은 오늘따라 바쁘다

잠시 지나가는 인생 시간이지만

터질 듯 가습 답답함을 누가 알아주랴

신랑인 나도 잘 모르는데

악다문 입술 맞물림도

살며 지쳐 참았던 눈물 혼자 주르륵


그래도 밥을 익히는 동안 아들 입으로 신랑 입으로

들어갈 행복 일일이 쪼개어 나누어 놓고

시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도 밥 한그릇 준비하니

남은 건 누룽지 한날 내낸 또 누룽지로

식탁을 준비해야 하는 아내의 한숨소리 칙 칙

얼마나 더 오랫동안 압력을 가해야

아내만의 밥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오늘 칙 칙 거리는 저 소리에

괜히 죄지은 것처럼 눈치 본다

괜히 어깨에 힘주었다가 내일 아침 파스 붙일라

그래도 저 소리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김두기 詩 <압력밭솥>


오창훈>>

요 지난 며칠 동안 김두기 선생님의 시집 4권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추려 본 20편 정도의 좋은 시(詩)들을 함께 읽고자 몇 차례 나누어서 올려 봅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여인이 또 어디 있을 까요? 특히 마지막 편 <압력밭솥>은 압권입니다.^♡^

오창훈   Aug 15, 2021, 10:09 PM ·4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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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중근 사진가 作

새벽길 빗질하면서 쓴 시 3편

1.

새벽에 눈뜨면 어김없이 길을 나선다 아직 꿈에 취해 있는

하늘은 별들을 곳곳에 심어 놓고 가슴 벌리고 길 끝을 잡고 있었다

눈뜨기 직전의 달콤함은 무겁게 어깨 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로수 잎에 하루를 시작하려는 이슬의 실날같은 마음 기도로 걸어가고 있다

한쪽 가슴 찾아가는 달빛은 더욱더 환하게 손 흔들고 있다

그 빛은 아직 집 찾아가지 못한 삶의 뿌리로 들어가고 있다

새벽 몸통이 기지개를 펴고 갈래갈래 길 찾아 나서는

길의 영혼에 삶은 새처럼 날개를 파닥였다

그 새는 가슴을 한쪽 잠시 땅속에 묻어 놓고

줄기를 피어 올리는 우리들의 영혼들이었다

영혼의 잎사귀들은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다

때론 흔들림의 경련에 못 이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 사라지는 울림은 어둠 속으로 파고들다가 아침 해를 불러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직업 속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새벽은 고르고 있다

-김두기 詩 <새벽길>


2.

낭자하게 누워버린

껍데기들의 옷을 재단하듯 잘라내고

늙어버린 어둠을 이어 붙이려 한다

토라져 버린 눈빛은

마른기침 같이 건조한 목소리로 갈라진다

껍데기를 정리하는 사이 나의 손목에는

하루만치의 눈물이 타박상으로 쌓이고

도로 위에 발을 걷게 한다

마지막 흔적처럼 꼭 남아야

헐렁한 껍질로 환생하는 것이겠지

길은 껍질을 신나게 받아들이고

배심원처럼 나를 그 자리에 얹힌다

자신의 껍질을 본 적이 있으세요

가로수 잎에서 슬픈 바람소리가

아리아처럼 가슴을 파고 들면

길을 벗어날 옷 한 벌 흔들어 보이는 세상은

살아 온 흔적인지, 가벼운 옷을 벗다가 목에 걸린

느낌은 마지막의 통증을 받아 보내고

미화원의 품 속으로 모습을 숨긴다

-김두기 詩 <껍질을 위로한다>


3.

아무렇게 뒹굴며 살아도 사는 게 좋다

누구의 눈치를 살필까 가진 가식을 꾸미지 않은

그늘진 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동안

구더기가 감옥같은 비닐봉지 속을 빠져 나와

꼬물꼬물 군인 포복처럼 기어간다

마치 어둠 속에서 감추어진 나의 마음처럼

날개 돋아 파리가 될 때까지

세상을 음미하는 마음의 소리 만날 때 까지,

썩어가는 쓰레기 속 집 기둥을 세우는 동안

나를 휘감은 냄새는 너무 무거웠지만

몰래 버린 양심은 간혹 나를 기쁘게 했다

던져지는 손끝에는 구더기도 되지 못하는

일그러진 시체처럼 죽어간다

파라야 파리떼야 매일 즐겁다

곳곳에 맛좋은 먹이가 저장되어 있으니

청소를 하며 나도 먹는다

그곳에서 내가 살아가는 피안이 있으니

좁은 골목길 돌고 돌아서 내가 가고 있으니

저 구더기 하늘 반짝이며 날아오르는 어둠에 걸어 놓은

밝음과 맑은 물의 알갱이들이

바스러져 흘러가는 상처의 노래들

친구처럼 늘상, 마주 보며 눈뜨고 살고 싶다

-김두기 詩 <현자의 꿈>


Member 오창훈

<oooo> 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겨울밤 아랫목에 모여 담요에 발을 집어넣고,

도란도란 하루 일과를 수다 로 풀어 내는 정서를 엿볼 수 있어서 입니다.

더불어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더하는 데,

바로 김두기 선생님 같은 시들이 그렇습니다.

‘몸 詩’ -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시를 이렇게 표현하지요.

직업을 통해 얻어 지는 소재, 잘 걸러진 정서를 담은 시 3편을 필사해 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현자의 꿈> (물론 모두 식사는 마친 후겠지요.) 

오물 쓰레기 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구더기를 보며 이렇게 풀어갈 수 있다니,

이를 쓴 시인이 바로 현자(賢者)입니다. 보들레르(<악의 꽃> ),

말라르메, 폴 발레리 등 탐미주의자(眈美主義者) 가 멀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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