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남명문학상 심사 결과 수필 부문 우수상 이경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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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남명문학상 심사 결과 수필 부문 우수상 이경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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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이경훈 수필가


서로 다투지를 않는구나


문득 남명 조식선생님의 시조 한 수가 생각난다. 학문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알면 바로 행해야 된다는

실천궁행의 뜻을 피력한 조선시대의 학자답게, 자연의 섭리를 시속에 함축해서 표현했다.

路草無名死(노초무명사) : 길가 풀은 이름 없이 죽어가고

山雲恣意生(산운자의생) : 산의 구름은 제멋대로 일어난다.

江流無限恨(강류무한한) : 강은 무한의 한을 흘려보내며

不與石頭爭(불여석두쟁) : 돌과는 서로 다투지를 않는구나

 

각자도생하면서도 결국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만물의 척도는 제각기 다르지만,

그 속에서 한결같음이 유지된다는 정도(正導)를 이야기한다.

아하! 풀과 구름과 강과 돌이 어우러진 자연에 대하여 평생 잘 모르고 살 뻔했다. 모르고 사는 게 어찌 이것뿐이랴.

살아온 시간과 앎의 분량이 비례해야 하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나이 값 같은 게 구체적인 항목으로 나뉘어

세세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내가 사는 지상의 규범이 다행스럽다.

길가의 풀이 무성한 하천변은 바야흐로 팽팽한 봄날이다. 간간히 머리카락 휘날리다가 어느 순간 굿거리장단으로

아름드리 고목의 억센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바람연주가 한창이다. 흔들리면서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꽃들의

춤사위가 흐무러지는 풍경 사이를 그들과 하나인 듯 나는 천천히, 그저 천천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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