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남명문학상 심사 결과 수필 부문 우수상 이경훈 2

공모전

제2회 남명문학상 심사 결과 수필 부문 우수상 이경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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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이경훈 수필가


서로 다투지를 않는구나


차례를 정해놓은 것처럼 소리조차 없는 호명으로 슬며시 등장해 흐드러져있는 봄꽃들을 보며 환호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내게 봄은 그다지 달가운 계절이 아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 즈음에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낯선 상황들과의 서툰 교류가 내키지 않아서였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새로움과의 대면은 늘

가슴속에서 설겅거리는 소리를 냈고 때론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춥다고 표현하기는 다소 미흡하지만 차가운 쪽에

가까운 서늘한 하루를 견디곤 하던 봄의 정체는 마음을 헛헛하게 했다. 창밖의 햇살은 환하게 밝은데 정작 다가오는

대기는 명칭부터 새침한 꽃샘추위라는 이중적인 것이었다. 기온에 맞지 않게 옷깃을 파고드는 이 어설픈 추위는

그야말로 비겁한 회색분자 같아서 미덥지 않았다.


게다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다고 새날을 설계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선뜻 동조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심신을 화사하게 단장해 봐도 선뜻 내디뎌지지 않던 주저함 같은 건 무엇에서 기인했을까. 결국 양면성을 가진 현명한

계절을 좀 더 기꺼운 마음으로 환영하는 눈치 빠른 영민함이 부족했던 것 일게다. 계절에까지 확고한 이분법적 잣대를 들

이대는 편협한 아집은 직장생활을 하는 긴 세월 내내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 시절이 후회 섞인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순간도 가끔 있지만 이제는 모두 두루뭉술한 형체로 남은 기억일 뿐이다.


느닷없이 지나는 바람 따라 애써 핀 꽃 이파리들이 한꺼번에 와그르르 수선을 떤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의 흐릿함을 지금

이 순간의 오지랖 넓은 바람에 섞어 후후 날려 보낸다. 따스함에 취한 채 나무와 풀과 구름과 냇물을 바라보며 걷는 일은 시간을

넘나들게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간 모든 것은 각색이 가능하므로 현재를 산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가진 최상의

순간이 되어준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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