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국 석정문학상(기성작가) 당선작 연재, 시 부문 우수작 -화엄에 오르다 / 정주이

공모전

제1회 전국 석정문학상(기성작가) 당선작 연재, 시 부문 우수작 -화엄에 오르다 / 정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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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우수상 화엄에 오르다 / 정주이
 



화엄에오르다

 

산문 밀치고 올라서면

길이 마냥 바위를 뚫는 천공 같다

 

산울림처럼 저 처연한 수목속엔

아직 안개가 앞선 자취를 지우고

 

얽어맬 수 없을 한 페이지

받쳐들고 있다

 

저기 산모롱이 이정표를 돌아

길섶 풀물에든 낡은 경 소리

 

한 구절 내내 떨쳐버리지 못해

마음 질척거린다

 

산빛을 깨치고 숲을 향해

잔가지에 얹히는 경전

긴 속삭임 다 쏜아내며

구름비낀 새벽달이 차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져 얼어버린 채

꿈틀거린 어둠이 깊게 주저 앉는다

 

저항의 향유처럼

저물어가는 썰물의 푸른멍은

한해의 유언을 듣더니

 

팽팽한 떨림속에 참회하듯

한 줌 빈 나무로 서서 용서를 위하여

흔들리고 있다.

 

 



 

겨울눈물 꽃



살쾡이 울음이 잦아든 새벽

고갯길 따라 끈질기게 기어오르는 안개가 고요 덮고 있다


회색빛 허물 벗을 무렵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시간

설익은 햇살처럼 반쯤 감은 낯익은 눈빛 부어오른 혀를 내밀고 있다


남겨 놓은 발자국에 빗물이 고이지 않았는지

문득 가슴 저릿해져 그리운사람 속살 시린 부표 되어

켜켜이 쌓인 여운의 봇짐 한 소끔 묵상에 젖어든다


이슬에 젖지 않고 영롱한 풀잎은 없듯이

엊그제 노랗던 은행나무 오늘은

세찬 비바람 속에 시달리며 우수수 잎 떨군다


목덜미 여미고 지나가는

풀잎의 신음 소리


희디흰 각혈 발밑에 쏟아붓고

한 톨 풀씨로 피어난 숨결


가슴 깊은 곳에 늘 그렇게

간절한 속울음이 긴 그림자로 서 있다





가을단상



청록빛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찻잎 우려내며 더께 앉은 우울이

몸속 깊숙이 웅크린 채

혈에 비수 꽂는지 통증에 불꽃튄다


굳게 잠긴 빈방에 높새 바람처럼

살아지지 않는 마음 하나 문질러도

피 흘리지 않은 한 생이 살고 있다


잔물결이 바람에 헤적일 때

그 속에 내 영혼은 겹잎으로 깃 세운

시린 연서 저 해묵은 손짓은

창가로 뻗은 또 하나

눈 먼 허공에 누워 꽃 진 자리에

한그루 푸른 저녁을 짓는다.




당선소감

상심한 하얀 달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단 한 줄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러니 하게도 위로가 되어준 건 시 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불을 잡고 더듬거릴 적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문앞에 서 있다.

율격의 씨앗을 품고 주름진 세상을 달릴것이다.

꿈과 현실의 거리를 좁히는 건 행동이라고

끈기가 곧 재능이 될 수 있다고 늦게나마 말할 수 있었다.

존경하는 심사위원선생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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