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전국 남명문학상(기성작가)당선작 연재, 시 부문 등댓불 깨어나면 그 섬에도 파도가 일렁일까 / 공영란

공모전

제3회 전국 남명문학상(기성작가)당선작 연재, 시 부문 등댓불 깨어나면 그 섬에도 파도가 일렁일까 / 공영란

포랜컬쳐 0 276

8311e848482ffb2d0302f1743c3aae2e_1660268258_97.png

시 부문 우수상

<등댓불 깨어나면 그 섬에도 파도가 일렁일까> 공영란


등댓불 깨어나면 그 섬에도 파도가 일렁일까 


                                       공영란


붉게 하늘 물들이며 웃던 노을도 기울어 잠든 밤

비바람에 이끌린 촉수로 물보라를 깨우는 바다의

욕심 많고 음흉한 웃음 말아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요사한 파도가 신의 잔으로 몇 순배 돈 후 취기로

손아귀에 쥐고 흔들며 볼기 후려치듯 그악스럽지만

주저앉은 단단한 바위들은 저항 없이 고요하다


악착같았던 젊음이 바위마다 서려 있었건만 이젠

덕지덕지 석화껍질 달라붙은 덥수룩한 물이끼 껴입고

말없이 눌러앉아 기꺼워하며 지난 세월만 더듬다

파도가 흔드는 솟구치는 물보라에 숨겨진 욕망

하나둘 내어주고 허공을 나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뱃고동 등댓불 찬란한 빛으로 전하는 그리운 사랑 


무너질 인연의 끝을 돌아서게 하던 애원으로

길 막아섰던 가물거림 허공을 가르던 그 얼굴엔

아직도 지난 세월 숨겨진 욕망이 꿈틀 거린다

모든 사물 발라먹은 어둠이 등댓불에 깨어나면 

바위마다 향수에 젖게 하던 바다의 도리깨질

수평선 넘어 그 섬에도 저 파도가 일렁일까






수묵화 같은 촌농의 미소


                      공영란


산비탈 층층 계단 같던 황토밭이 한여름

붉은 땀방울 삼킨 푸른 콩잎들 너울춤으로

청학을 불러 수묵화를 그린다


오늘도 소나기 내려 깊게 페인 고랑들이

고단한 농부의 이마에 앉아 숨 고르기만 하다

거친 손에 매달려 사라지고


억겁의 골짜기 굽이 불던 하늘 바람도

솟구친 태양의 열기도 천고의 선풍 되어 그림 속

그림 속 저녁노을에 걸린 촌농의 미소가 된다






삶은 집게발로 잘라버릴 수 없는 향기다 


                                  공영란


갈비뼈 사이를 뚫고 빠져나가는 운명, 운명 속에

어둠을 헤쳐 산을 오르는 외로움은 아무렇지 않다

언덕을 넘고 산 아래 고요한 향내 가득한 불상이

매일 그를 물끄러미 말없이 지켜보며 침묵하여도

고단한 종아리 근육 도깨비방망이를 들어내도록

믿음의 무릎 법당을 매끈하게 광내는 걸레 되면

열대의 태양이 몸 벗고 생을 잘라내어 태우듯

태초의 갈증들이 찬바람에 새어 나와 어른거리다


질펀하게 흐르는 삶의 현실에서 구겨지고 버려져

내장까지 다 비치는 자유를 걸치고 오늘도 그가

던져진 목숨이니 하늘을 뚫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원시의 낡은 약속 꾸역꾸역 긁어모아 걸음 풀면

내려다보던 법당 불상의 평온하고 온화한 여유가

떠돌며 망설이던 몸을 웃음으로 씻어내어 햇빛에

더 붉어진 꽃잎 사이 간간이 부는 바람에 말리니

삶은 집게발로 잘라버릴 수 없는 향기로 찬란하다

♬당선 소감문♬

어쩌면 지루하고도 길게만 느껴질 수 있는 세월 속에서 가고  

또 가는 길모퉁이 수없이 많은 억겁의 인연에 노을보다 더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원치 않는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고통을 만나 삶의 지표가 달라짐을 느낀다 

몇 해 전 동해 해안 따라 서해까지 이어진 여행길 저녁 무렵

도착한 황금빛 바다의 황홀함 속에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쌍의 노부부와 혼자인 중년의 여행객을 보게 되어

잠시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보는 상상을 하다 늦은 시간까지 바라본 바다 풍경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맞는 바위들과 어둠 속 먼 해안 저 너머

작은 섬들의 모습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묵묵히 나이테를 그려가지만,

등대라는 불빛이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

습작했던 것을 퇴고하여 기대하지 않고 응모하였는데

좋은 결과로 응답하여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