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특별 기획-이지희의 지면 낭송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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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특별 기획-이지희의 지면 낭송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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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희 시인. 시낭송가. 방송인

 

낭송, 어떻게 할 것인가   

 

- ‘어머니라는 외침 -

 

시낭송가들이 많이 낭송하는 시의 시어들을 먼저 들여다보자.

시에는 어머니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어머니라는 시어도 시마다 다르게 작용한다.

주요 감정이입의 대상인지, 아니면 말을 건네는 수단이 되는지,

화자의 공간이나 객관적 상관물을 환치시킨 대상인지를 잘 봐야 한다.

그에 따라 바른 낭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

 

그리라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하나도 빠뜨리지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하나도 빠뜨리지않고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끝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세로 파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 육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전봉건 시 뼈저린 꿈에서만은 남북으로 갈라진 아픔 속에서 고인이 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시적화자의 주요 감정이다. 그러므로 낭송을 할 때 어머니에 대한 외침 부분(밑줄)

그리움이 고조에 달한 부분에서 감정이입을 마음껏 시켜 표현하면 좋다.

그러나 아래 신석정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문병란 시 불혹의 연가는 다르다.

이 두 시에는 어머니를 목청껏 높여 감정을 표현하면 어색하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시대상황에 맞서 이상세계에 대한 꿈과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부르기 쉽고 친근한 대상인 어머니를 불러, 내면 속 상상을 이어나가고 있으므로,

어머니가 주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낭송할 때 어머니의 어조를 높이지 않고, 어조를 낮춰

고즈넉하게 부르는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 불혹의 연가도 마찬가지다. 흐르는 강은

녹록치 않은 인생사를 풀어놓으며 위안이 되는 시적화자의 공간으로 작용하며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화자의 고뇌나 울고 싶은 마음 표현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머니부분은 신파조로 울먹거리며 강하게 부를 것이 아니라, 어조를 낮춰 힘을 빼고 낭송해야 한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불혹의 연가 /문병란

 

어머니 이제 어디만큼 흐르고 있습니까 목마른 당신의 가슴을 보듬고 어느 세월의

언덕에서 몸부림치며 흘러온 역정 눈 감으면 두 팔 안으로 오늘도 핏빛 노을은 무너집니다  

삼남매 칠남매 마디마디 열리는 조롱박이 오늘은 모두 다 함박이 되었을까

모르게 감추어 놓은 눈물이 이다지도 융융히 흐르는 강 이만치 앉아서 바라보며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보셔요. 어머니. 나주벌 만큼이나 내려가서 삼백리 역정

다시 뒤돌아보며 풍성한 언어로 가꾸던 어젯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이마 묻고 울고 싶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흐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새끼 네명을 키우며

중년에 접어든 불혹의 가을 오늘은 당신 곁에 와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남은 사연이 있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르는 강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목마른 정오의 언덕에 서서 내 가슴 가득히 채우고 싶은

무슨 커다란 슬픔이 있어 풀냄새 언덕에 서면 아직도 목매어 흐르는 강나는 아득한 곳에서

회귀하는 내 청춘의 조각배를 봅니다  이렇게 항상 흐르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손을 흔들게 하는

어느 정오의 긴 언덕에 서서 어머니,  오늘은 꼭 한번 울고 싶은 슬픔이 있습니다

꼭 한번 쏟고 싶은 진한 눈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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