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디카시 / 위점숙 - 문법책엔 없다 (5월 둘 째주)
품으로 파고든
지상에서 다한 인연
내 어깨에 매달려 재롱부리는
꽃들 눈에 아른거려
냉정히 뿌리치지 못했다
- 위점숙
-----------------------
세상에서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을 위점숙 시인은 '문법책엔 없다' 라고 제목을 달고 시작한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학자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볼 때의 두 가지 관점을 ‘스투디움’과 ‘푼크툼’으로 설명했다. 그 개념을 오민석 평론가는 디카시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원리로 다루고 있다.* 디카시를 쓰는 사람은 스투디움을 넘어 푼크툼을 건드려야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사진은 고목이 몸통에 몇 송이의 동백꽃을 매달고 있어 신기하고 어여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보편적인 느낌이 스투디움이라면, 거기서 ‘내 어깨에 매달려 재롱 부리는 꽃들이 눈에 아른거려’ ‘냉정히 뿌리치지 못한’ 고목의 마음을 읽은 것이 시인의 푼크툼이다.
이렇게 보편적인 사진 기호와 독특한 문자 기호가 합쳐져서 의미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디카시의 효과를 이 작품은 잘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사진에서 독자는 문장이 채 설명하지 않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화자'인 고목은 볼품없이 성기게 피어 있는 자기 꽃을 뒤로 하고, 크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동백 꽃송이들에 집중한다. 고목은 돌담집의 안쪽이나 대문 곁과 같은 주목받는 곳에 서 있지 않다. 모퉁이에 자리하며 몸통은 오래되어 썩고 패인 자국이 역력하다. 이런 늙은 몸에 있을 수 없는(‘문법책엔 없는’) 우연이 발생한 것이다.
이 상황을 보고 필자는 늘그막에 가슴으로 아이를 품은 어떤 사람을 떠올렸다. 늙고 병도 들어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시설에서 만난 눈에 밟히는 어린 것을 뿌리칠 수 없어 입양한 사람이다. 귀엽고 똘망한 눈빛으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유기견을 마다할 수 없어 데리고 가는 사람들 생각도 났다. 또, 엉뚱하게도 빨간 동백꽃이 ‘빨간 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주인공)으로도 보였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정하고 수다스러운, 가여운 고아 소녀 앤이 자신을 받아달라고 애쓰는 모습이...
동백꽃은 꽃의 생을 세 번 산다고 한다. 나무 위에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져 마치 땅에서 피어난 것처럼 두 번째 꽃을 선사하고, 마음에서 세 번째 꽃을 피운다고 한다. 떨어질 때 꽃잎이 흩어지지 않고 송이째 땅에 머무는 모습은 마치 마지막을 우아하게 마무리하고 가려는 여인 같다.
시인이 만난, 고목에게 매달려 재롱부리는 동백 꽃송이들은 지금 몇 번째 생을 살고 있는 중일까.
_선정 및 감상 : 현송희
*사진이 전달하는 평균적이고 객관적인 정서를 ‘스투디움’이라고 한다면 ‘푼크툼’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 자기만의 경험과 감성을 찌르는 독특한 정서를 말한다.
(오민석, 박해경 디카시집 《달을 지고 가는 사람》해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