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동행 * 이 달의 Artem *부싯돌 문학상 * 고구마와 사이다 * 최병석 작가
#대상 - 1월
#부싯돌 문학상
#부문 콩트
고구마와 사이다
최병석 시인 콩트작가 삽화가
구마씨는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늘 상 바쁘다는 핑계로 회사 일에만 열심이다 보 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고 아내의 얼굴에는 미소보다 찌푸린 굴곡이 가득했다. 리플레쉬가 필요하다.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가 가족의 안위와 행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구마씨가 각성했다. '이렇게 가다 가는 큰일이다!' 그가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배려를 요청했다. 오랜 기간도 아니고 2박3일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회사에서도 호응을 해줬다. 약간의 금일봉까지 하사 해줬다. 자, 이제 시간도 돈도 생겼으니 갈 곳만 정하면 되었다. 그가 이런저런 소문과 정보를 들이 대며 조건에 부합하는 여행지를 물색하고 또 물색 해보았다. '이 싯점에서는 아무래도 베트남이 딱이네!' 하사받은 금일봉에 부합하는 경비와 아이들과 아내도 좋아할 만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아도 좋을 곳은 베트남이었다. 구마씨는 난생처음 본인 것과 식구들 모두의 여권을 만드느라 동분서주했다. 큼지막한 캐리 어와 이런저런 준비물들을 혼자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발품을 팔며 챙겨나가는 과정이 즐거웠 다. 이제 그의 가족들이 오랜만에 여행을 떠난다.
그의 집은 서울이 아닌 안성이기에 해외여행 을 떠나려면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해야만 한다. 안전하게 여행사의 가이드와 접선하려면 공항 리무진버스 첫차를 타야만 한다. 새벽 5시 반에 졸린 눈을 비비며 온 가족이 버스에 탑승을 완료했다. 생전 처음 잠결에 벌떡 일어나 버스에 오르게 된 가족들은 비몽사몽 정신이 없다. 출발한 지 30여 분이 지나고 버스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어둡기만 한 주변엔 웬일인지 뿌연 안개가 한창이다. 버스는 제 속도를 못 내더니 급기야 서행 운전 중이다. 진행이 한참이 나 더디더니 결국 전방의 전광판에 <사고알림>메세지가 떳다. '이거 아무래도 울 가족의 첫 여행을 시샘하는 것 같은데...'
구마씨가 웬지 불안해졌다. 버스가 정체구간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된 청년 하나가 출입문 앞까지 와서 는 기사를 졸라댄다. "저으 기기사님! 저 근처 아무 데나 차 좀 세워주심 안돼요?" "안됩니다! 여긴 고속도로라 아무 데나 세웠다가는 큰일나요" 청년의 표정이 우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버스기사는 최대한의 속도로 최근접 휴게소에 당도하 였다. "저기 총각! 문 열어 줄 테니 냉큼 다녀와유~" 청년은 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밖으로 내달렸다. 엔진이 멈춘 버스내부는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돈다. 일부 눈을 붙인 채 코를 고는 승객 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를 염려하고 있는 중일듯.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서 빠져나간 청년이 30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다들 애가 타 고 답답함이 몰려온다. "아니 그 친구는 왜 안 오는 겨? 여 기사양반 그냥 출발합시다. 이러다 우리 모두 비행기 놓쳐요" "거 누구 아무나 화장실에 가서 뭔 일이 났나 확인 좀 해보고 오시지 않을래요?"
맨 앞에 앉아있던 또 다른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내 달린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또 감감무소식이다. 또 다른 이가 화장실로 급파견 되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새 파랗게 질린 채 화장실로 내 달렸던 문제의 바로 그 청년이 두 명의 정탐군(?)에 이끌려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 청년으로 향해있었고 버스에 들어서는 순간 한바탕 시원 한 욕지꺼리를 해 댈 심산이었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그 청년의 복장이 변해있었다. 어 떤 차림이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버스를 벗어난 때는 분명 말쑥했었다. 그리고 지금 웬지 모르게 정상적인 복장이 아니다. 다들 입을 다물었다. 잔뜩 무거운 항변을 싣고 어둡기만 하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야 하는 버스가 자꾸만 가 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대낮처럼 환한 출근시간의 한복판에 걸려들었다. 당도해서 수속을 밟고 있어야 할 공항에서 자꾸 전화가 온다. "저 아버님! 지금쯤 도착하셨어야 되는데요? 어디신가요?" "그게 참...상황이 답답" 구마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공항버스 안에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며 비행기에 오르 고 있는 가족들의 꿈같은 여행을 상상하고 있는 중이다. 성이 고가여 이름이 구마씨 <고구마>씨 가족은 모처럼 계획했던 해외여행의 꿈을 출근길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는 공항버스 속에서 시원한 사이다를 갈망하며 답답함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