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포랜컬쳐 이달의 Artem * 부싯돌 문학상
# 수필 부문(에세이)
#1월 본상
<에세이〉
가도 가도 왕십리
예박시원
노벨문학상 문턱까지 갔다가 지옥 맛을 보게 된 ‘만인보’를 쓴 고은 시인도 시집이라기보다는 만담집에 가까운 시집을 여러 권 써서 문단의 대가(大家)가 된 분이다. 그분이 지옥 맛을 보게 된 건, 같은 문단에서 시인 활동을 하던 여성 문인들 때문이다. 혹시 지독한 페미니스트(feminist)들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걸 밝힌다는 속설 때문일까. 고은 시인을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던 여성 문인들이 제법 문단에서 뚜르르 유명세를 탈 때쯤 배신(?)을 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당사자들끼리 알아서들 풀 문제고 세간에서 입방정을 함부로 떨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좌파 시인으로 알려진 칠레의 민중시인 ‘네루다’와 가난한 섬의 우체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일 포스티노(시인과 우체부)’에 나오는 대사 한 자락을 차용해보면 ‘서글픈 그물을 잡아당긴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곧 시구절로 활용이 되었다. 어부들은 가난하고 신산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그걸 일상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봐왔던 섬의 가난한 우체부 청년도 ‘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흔한 노랫말에도 나오고 시 구절에도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바로 서울의 왕십리와 만리동 풍경이다.
‘가도 가도 왕십리…’ 비올 때의 왕십리 빗소리는 유달리 구슬프고 그 소리도 요란하다.
눈 올 때의 만리동 풍경은 같은 눈이라도 눈이 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굵고 선명하다. 아마 입장과 처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다르겠지만, 신산한 삶에 대한 감성은 비슷할 것이다. 삶에 대한 진지함이나 성찰은 그런 세밀한 관찰이나 분석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작품은 그렇게 탄생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담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논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삶에 대한 진정성’인데 삶에 대한 진정성이란 곧 ‘생각 없이 사느냐’와 ‘생각을 하고 사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소위 머리에 먹물께나 든 식자(識者)들이 그런 담론을 많이 하는데, 세상을 보는 관점은 꼭 지식인들만 ‘삶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건 아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삶에 대한 철학과 성찰, 지혜가 많은 분들이 많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학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그런 저급한 콤플렉스를 심어주며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는 저급한 지식인들이 있기에 세상은 지금까지 이렇게 흘러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화평을 깨는 전쟁이나 배신, 매국(賣國) 따위의 추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많이 배운 지식인들이었다는 것은 역사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다.
필자도 ‘무식하다’는 소릴 듣기 싫어 무던히도 공부하고 노력했던 사람인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고 힘든 게,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인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순간은 바로 세상에 대한 겸손함인 것이다. 세상 공부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지식 공부도 하다 보면 결국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세상 이치가 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緣起法)처럼 그물망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 는 만물의 인과관계와 상호의존성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을 추구하는 고도화된 자본주의에도 경고를 한 말인지도 모른다. 절대다수의 빈자(貧者)들이 멸(滅)하면 소수의 부자(富者)들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경고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메일 한통이 날아왔는데 ‘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는 시집과 시 한편이 소개된 메일이었다. 그 한편의 시를 읽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세상 지식 공부와 문학 공부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진실한 삶에 대한 진정성이 살아 있는 시를 접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스물 둘에 결혼하고 보니 / 군인 월급 3,500원 / 지지리 가난했다 / 그래서 / 애기 아빠가 월남에 갔다 // 나는 한글을 몰라 / 편지를 못 썼다 / 편지 대신 김 세장씩을 / 편지 봉투에 넣어 월남에 보냈다 // 내 나이 팔십 줄에 / 한글을 배운다 // 이제 남편에게 / 김 세 장 대신 / 편지도 쓸 수 있는데… //
「김 세 장 씩 / 김맹례」
온갖 수사법과 메타포로 난해한 시를 쓰려고 연구하고 공부했던 시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항공기 제작회사와 인연이 돼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이놈의 직장 동료들이 또 보통이 넘는 악마구리였던 게 나를 자극시켰던 모양이다. 첫 계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단순하게 취미생활 동호회 중 ‘서예동호회’에 가입하여 붓글씨를 배울 때였다. 한자서예를 안하고 무식하게 한글서예를 한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해괴한 구설수와 비방이 난무했었다. 서예 하나 하는 것도 한자서예를 하면 무식하지 않고 한글서예를 하면 무식하다니 그런 괴이한 논리가 어디 있나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나 필자가 문인활동 할 때 알아보기 쉽게 한글전용으로 쉽게 풀어 쓴 시나 수필, 소설은 역시나 수준 이하로 폄훼되고 문인들 세계에서도 조롱을 하는 이상한 현상들이 있었다. 왜 꼭 배운 티를 내고 ‘자’자 ‘자’자를 써야만 사람대접을 해주고 쉬운 말을 쓰면 사람 같지도 않은 취급을 할까 문인활동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해 왔던 게 사실이다. 특히 직장생활에서는 영어 용어를 쓰지 않으면 역시나 동료들끼리도 무식하다고 따돌림을 하는 이상한 문화가 형성돼 있어서 그 분위기에 적응 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필자의 학력이 사회에서 보기에 그렇게 짧지 않은 학력임에도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쓰면 꼭 무식하다는 조롱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반대로 전문 용어를 한자어나 영어로 표현하면 입을 딱 봉하고 고개나 끄덕이고 있어서 이게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웃기는 고민을 했던 일이 많았었다.
일부러 마구 전문 용어를 쓰면서 설명하고는 ‘저 사람은 도대체 말귀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까’ 하는 웃기는 생각도 들 때가 간혹 있었다. 왜 꼭 굳이 그런 억지 문화를 형성할까. 그것 또한 우리 사회의 지독한 콤플렉스(Complex)는 아닐까. 어떤 영화에서 무식한(?) 캐릭터의 마동석이 한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던 게 오해를 받아 무식하다고 조롱을 받자 영어로 마구 떠드니까 ‘어머 영어 잘 하네…’라고 반색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것은 아닐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영어만 잘하면 유식해지는 건가. 물론 영화 밖에서의 영화배우 마동석은 무식한 사람은 아니다. 참고로 필자도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영어성적은 80~90점 이하로 내려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사회에서 영어를 쓸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달달달 외웠던 ‘콘사이스 영어사전’의 단어들이 점점 절반으로 또 반의반으로 줄어들고 독해력도 쪼그라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건 나이 탓도 있을 게다.
나는 그들에게 김맹례 할머니의 ‘김 세 장 씩’ 시 한편이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게 진짜 삶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상한 척, 있는 척, 도도한 척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삶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쉬운 말로 인생 공부 헛공부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 공부는 그렇다 치고 적어도 시 창작 공부를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자’자 ‘자’자를 논하기 전에 단순한 삶의 진리부터 배울 일이다. ‘내가 제일 잘나가’, ‘내가 최고야’ 자랑하는 건 쉬운 말로 코흘리개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 알아야 한다. 쉬운 시 쓰기부터 해보자. 문학적 메타포(metaphor)와 지혜는 성서와 불교경전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체득이 될 수 있다. 더 자연스럽게 접근하려면 영화 ‘일 포스티노(시인과 우체부)’ 영화 한편을 보면 ‘시란 무엇인가’를 전문대학이나 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시론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가까이는 억척스럽게 여자의 몸으로 먼저 간 남편 대신 고된 뱃일을 하며 자녀들을 성장시킨 여선장 김명이 시인도 있다. 삶에 대한 진정성은 바로 그런 곳에서 나온다. 내가 아는 진짜 시인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색하고 연구하던 시인들이 아니고 농사일을 하거나 건설현장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며 곰빵질(잡부) 하거나 조금 수준을 높여 목수 일을 하거나 엔지니어를 하며 함바집(공사장 단체급식소)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 진짜 시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도 과거에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었고 산업현장에서 용접일과 장비가공, 조립 일을 했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했던 적은 없었다.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도둑질, 사기, 강도 같은 범죄를 빼고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봤던 게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고, 이런저런 견디기 힘든 수모나 험악한 일을 겪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내력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직종이 지금까지 억지로 버텨오던 컴퓨터와 책상지킴이였던 것 같다. 남이 들으면 ‘호강에 받쳐 요강에 오줌 누는 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배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단에서는 아주 지능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소시오패스(sociopath)’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회에서 말하는 좌파단체에서 우파단체까지 그것도 깊게 관여해서 안 다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관찰하고 체험하며 오미(五味)의 맛을 다 보았다. 그러나 진짜 삶에 대한 진정성은 아주 단순한 것에서 발견을 해 냈었다. ‘자’자 ’자‘자 논하는 곳에서는 삶의 진정성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좌파단체에서조차 식(識)자 먹물만 들어갔다 하면 꼭 ‘자’자 ‘자’자를 논하고 사람들을 층하(層下)로 나누려는 짓을 하는 걸 보며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다. 그런 건 종교기관에서조차 마찬가지 현상을 경험했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세 개 종교를 그것도 아주 깊은 신심으로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단순한 세상이치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성직자들조차 여지없이 식(識)자 먹물만 들어갔다 하면 꼭 ‘자’자 ‘자’자를 논하며 대접 받으려고만 하고, 신자들 사이에서도 물질이 풍요로운 자와 가난한 자, 많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로 나눠 층하(層下)를 구분 지으려 한다는 것에 적잖이 놀랬고 실망을 하게 되었다. 종교기관에서조차 그러하다니 씁쓸하지만 이해를 해야겠지 그게 현실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시원 : 작가·문학박사
<월간문학〉 짬뽕 한 그릇,〈한국소설〉 짬뽕 두 그릇 등단 / 소설집 『토영 통구미 아재』
시집 『누가 바다의 이름을 부르는가』 수필집, 평론집 다수 발간 / 한용운문학상, 한국문학상, 박남수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수필가협회, 서울시인협회, 경남소설가협회, 경남시인협회 회원 /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계간『시와늪』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