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특선작 * 이달의 수필(12월) * 청량리역 광장의 시계탑 * 임상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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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특선작 * 이달의 수필(12월) * 청량리역 광장의 시계탑 * 임상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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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 광장의 시계탑

                      임상근

십이월의 까칠함이 살갗을 파고드는 어스름 저녁시간에 청량리역 광장에 도착했다. 옛날에 비해 터무니없이 좁아진 광장입구에서 허름한 중년이 기타 치며 홀로 바싹 마른 노래를 흘리고 있었다. 잠시 눈길을 주고는 오십 년 전 광장에 서 있던 시계탑을 찾았다. 초췌한 모습으로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수많은 사연을 간신히 붙들고 초췌한 모습으로 노숙인처럼 서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길게 토해내었다. 그 시계탑이 없어졌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으로 찾은 청량리역광장이었다. 모두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초췌한 시계탑을 향해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슬며시 시계탑에게 악수의 손길을 내밀었다. 차디찬 시계탑의 체온이 손바닥을 지나 가슴에 아리게 전해져 온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하며 슬며시 한번 안아주고 등도 몇 번을 토닥여주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아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슬며시 돌아섰다. 그런데 돌아서는 내 앞에 악수를 청하며 또 다른손을 내밀고 서 있는 사람이 있어 깜짝 놀랐다. 조금 전 광장을 들어설 때 기타 치며 노래하던 바로 그 가난한 거리의 악사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빙그레 웃으며 선생님 반갑고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자신은 옛날 청량리역광장 시계탑을 지키려고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런 그와 기차 출발시간 전까지 몇 십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처럼 가끔씩 이 시계탑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시계탑을 지키려고 매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잠깐의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긴 여운이 남는 감정으로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내가 타고 갈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여러 명의 승객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철길을 따라 불어오는 찬바람이 꽤나 차갑게 느껴졌다. 내 바로 앞에서 두 모녀가 티격태격하며 서 있었다. 어머니는 팔십 대 중반으로 보였고 딸은 오십 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 어머니는 한눈에 보아도 참으로 곱게 늙은 분이셨다. 찬바람이 몇 줄기 불어오자 그 어머니는 오십 중반의 딸을 춥다며 안아 주려고 팔을 벌려 안으려 하니 딸이 엄마! 가만히 있어하며 기겁을 한다. 어머니는 피식 웃더니 잠시 후 또다시 딸을 안아 주려하자 그 딸은 또 피하며 엄마! 가만히 있어한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 모녀를 향해 엄마가 된 딸을 엄마가 춥다고 안아 주려하는데 왜 그리 피하시나요 하며 웃어 보였다. 그 모녀도 나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비록 찬바람이 불어 추운 플랫폼이지만 따뜻한 모정에 가슴이 달아올랐다. 그 어머니 눈에는 딸의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딸은 어리게 보이나 보다. 이것이 아마도 모성애인가 보다. 왠지 그 모녀의 모습에서 역광장의 시계탑이 언듯보여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차갑게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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