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특선작 * 이달의 수필 * 월동 준바하던 날 * 조용현 수필가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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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7 11:36
#나의 고향에선 지금쯤 36
월동 준비 하던 시절
조용현
매년 이맘때쯤 일 년 농사일을 대충 갈무리 할 무렵이었다. 얼굴을 마주치는 바람결도 제법 스산하기만 했는데 우리 집의 빈곤한 살림을 도맡아 하는 어매도 연래적인 행사나 다름없는 겨우살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농사일이 바빠서 손보지 못했던 집안 구석구석을 따뜻한 겨울을 넘기기 위해서 바쁘게 손을 봐야 했다.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안방 구들장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곳을 아버지께 서 고치고,
그러고 나서는 온 가족이 드나들면서 삼시 세끼 밥도 먹고 포근하게 잠도 자는 안방 바닥도 수리를 해야만 했다. 오래되어 뜯겨저 나간 방바닥 종이도 모두 걷어내고 새로 발랐다.
어매가 방바닥에 한지를 겹겹으로 바르고 있으면 할머니께서는 한지 위에다 콩기름을 연거푸 바르고 또 발랐다. 콩기름 바르는 일은 할머니께서 거들어야 하는 꽤나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방바닥을 다 바르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바짝 말리고 나면, 집 안에서는 고소한 콩기 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콩기름으로 깔끔하게 손질을 마친 방바닥은 반들 반들 하면서 매끄럽게 윤기가 흐르는 게 너무나 좋아 보였다.
찢어지고 빛이 바랜 안방 싸리문에 창호지도 일일이 손으로 뜯어내고 안방을 비릇 해 건 넌 방 문짝까지 하얀 창호지를 발라놓으 면 산뜻한 싸리문 모습이. 아주 하얗게 빛이 났다. 그렇게 보기가 좋아 겨울이 오기 전에 꼭 한 번씩 집안 곳곳을 고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족들이 살아가야 할 거처를 모두 손을 보았다고 집안 손질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 다. 우리 집 큰 일꾼 황소가 기거하는 외양간 도 겨우살이를 따뜻하게 해 주어야 했다. 찬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곳은 막아주고 마구 간 바닥 지푸라기도 새 볕 짚으로 바꾸어 주 었다. 말로만 같은 가족이 아닌 정성으로 보살펴야 하는 식구였기 때문이다.
따뜻하게 온기가 도는 초가집 밑에서 생활을 하려면 지붕 개량도 해년마다 어김없이 해 야만 했다. 그렇게 하려면 이른 봄부터 열심히 지었던 벼농사의 부산물, 볕 짚으로 이엉을 만들었다. 탈곡을 하면서 흐트러진 볕 짚은 소 여물 이 나 두엄으로 사용하고 가지런히 잘 묶어진 짚은 새끼줄도 만들고 그 외 일 부는 이엉을 엮어, 회색빛으로 바랜 초가 집을, 노랗고 예쁜 집으로 아주 멋지게 만들었다. 요즘 경관 좋은 곳에 지어놓은 전원주택도 부럽지 않을 고즈넉하고 아담한 초가 집이 되었다.
몇 날 며칠을 걸려서 초가지붕에 필요한 이 엉을 엮으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 동원이 있 어야 했다. 이렇듯 어려운 일거리는 가까운 이웃들하고 품앗이를 했다. 그 시절만 해도 농촌은 아주 좋은 정서를 간직하고 있었다. 때로는 소나기도 쏟아지고 태풍도 불어서 헐거워진 울타리도 고치고, 한겨울이 오면 울타리 사이사이로 송송 들어오는 바람도 막아야 하는 겨울나기 준비는 연래적인 행 사나 다름없었으므로 어쨌거나 어매 아버지 께서는 늘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살으셨다. 가뜩이나 길고 추웠던 그 시절 겨울을 넘겨 야 하는 월동 준비는 그뿐 아니었다.
그해 가을에 비탈진 밭에서 거두어들인 목 화솜으로 무명 옷도 만들어 입었지만, 포근 한 이부자리도 만들어 아주 요긴하게 사용을 했다. 밤이면 요즘 우리들이 덮고 잠자는 이불보다 는 약간 무거웠다. 그러나 목화솜 특유의 부 드러운 감촉과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은 섬유로 만든 어느 이부자리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올망졸망한 토끼 같은 새끼들 하고 안락하게 살아 갈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은 우리 부모 님의 숙명이나 다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험난하게 살았던 시절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이젼 내만 편하 게 살면 된다고 삼시 세끼 밥도 잘 먹으면서 살고 있잖은가. 요즘 우리들이 살아가는 겨우 살이 준비는 예전하고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 무엇이든 어려잖게 준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아하니, 이 가을 날도 아쉬운 이별가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저 산마루 넘어오는 썰렁한 저녁 바람은 더 스산하게 불어오고 있잖은가. 내 고향마을 어디선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라도 보고 싶은 것을, 노을진 저녁 은 못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