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특선작 * 이달의 수필(11월) * 공산의 스케치는 낙동강 불사심 움튼다 * 문경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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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특선작 * 이달의 수필(11월) * 공산의 스케치는 낙동강 불사심 움튼다 * 문경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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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公山)의 스케치는 낙동강 불사심(不捨心) 움튼다

 

                                                                            문경주

 

 가락국(금관가야) 6대 왕 좌지왕(재위기간: 407~ 421)은 의희(義熙 3)에 즉위하였다.

정미년(丁未年) 즉위하여 14년 다스렸다. 시호는 신왕(神王)이다.

첫 부인 폐비 용녀(傭女)를 하산도로 보내고 난 후 어느 절 법당(法堂)에 

감중련(坎中連팔괘(八卦)의 하나인 감괘(坎卦)의 상형 을 이르는 말.)하며 

부처님의 음덕과 원력에 의존하였다.

주변 여러 나라와 끊임없이 교섭(대외관계)과 충돌(전쟁)을 거치면서 성장해 나간다.

대아간 도녕(道寧)’의 딸 복수를 아내를 맞아 아들 취희(吹稀)’를 낳았다.

가야는 5이시품왕(재위기간 346~407)407년 붕어(崩御)하였다.

6좌지왕 7취희왕 8대 질지왕이 교체되면서 정세는 불안하여 국경 분쟁은 지속되고 

장자 승계는 정착되어 발고여락(拔苦與樂: 당 대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함께 한다)하였다.

 

서기 400년 김해(대성동) 부산(북천동)은 폐전 이후 신라 영향권에 들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 북쪽 600m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구지봉이 있다.

분산성(김해 가야성) 대성동 고분군 91호분 순장자 인골과 유물들은 

북방 기마 민족의 문화로 야마토는 부여에서 내려온 기마 민족 가야국의 식민지였다.

 

대성동 57호분의 무덤에서 골반뼈로 알아낸 어린 시절 영양결핍으로 출산 경험이 있는

 인골이 발견되어 성〮〮 ???? 별 불문하고 나이 불문한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인 

그녀들은 어느 순간 낡은 투구를 고쳐 쓰고 고구려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애국심을 일컫는 언어는 금관가야의 급박했던 상황은 성 ???? 별 나이는 

(무)의미로 () 앞에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금관가야 가야사(伽倻史)를 들여다보며 가야국(伽倻國)은 변한의 

12개의 작은 나라들이 통합하여 세운 왕국이다.

깊고도 매서울 만큼 맹주로서 5629월 신라의 공격을 받아 

원망과 한탄의 뿌리 깊게 들려오는 구전(口傳)의 듣기 싫은 쓴소리로 

변방의 백성들이 피해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왜()의 침구(侵寇)를 많이 겪다 보니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타인을 업신여겨 이해타산적이라 

백제나 신라와 달리 주변 소국들을 통합하지 못하여 따돌림 배척(排斥)을 당하였다.

금관가야의 세력은 일본(대마도)으로 건너가 대가야는 금관가야의 패망 이후 가야 연맹을 주도한다.

금관국에서 반파국으로 가야연맹의 구심점(求心點)이 이동하는 그 시점이었다.

 

대의(大義)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용녀(傭女)가 있던 그곳(하산도)에서 산비탈을 내려다보았다.

전선(前線)의 오선보(五線譜)는 이탈하지 않고 평온하게 

높지도 낮지도 않아 하닷마 을 깨또리는 칠흑 속에 별이 빛난다.

가야(伽倻)는 성립(서기 42) 직후부터 불교가 중심이 되어 남방불교 전래설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좌지왕은 강한 자아(自我)를 가지고 있어 어떤 일에도 어려움을 굴하지 않고 처음과 끝이 같았다.

원을 그리듯 지역 집단이나 족단(族團)들은 이기심을 버리고 불교와 함께 융합되어 나간다.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로 크고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등과 계급의 칭원(稱寃: 원통함을 들어서 말함)을 실천하여 이웃 나라들과 

신의(信義)를 지키겠다고 서약하며 소중한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하였다.

조그만 소국들이 모여 마을이 되고 도시가 되어 가라국(伽羅國)을 만들었다.

고구려 남정으로 엄청난 적()이 등장하여 큰 위기를 겪었지만 신라 입장에서는 

백제 왜() 금관가야 연합군의 기세에 식겁한 신라는 고구려에 SOS를 요청하였다

이후에도 100년 넘게 유지했던 금관가야의 여인들은 말을 타고 공격하는 

여전사로 등자(鐙子: 말을 안전적으로 타기 위한 발걸이)까지 등장하여 전쟁사의 넘사벽이라 불린다.

역사의 맞수인 신라 고구려 백제의 카르텔과 충분히 대화하고 거칠고 어두운 곳으로 

각자 다름을 알고 역사를 등 쥐고 누워유물탄생도 방향성은 같다는 것을 

확고히유물 증언하니 역사의 면죄부를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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