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포토시詩, 정완식 시인편 1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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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3 03:20
정완식 사진 作
만추(晩秋)에 붙여
정완식
그토록 푸르던 젊음은
계절을 먹고
세월을 비켜나지 못해
빛바랜 파스텔 톤으로 곰삭고
느티나무 아래 빈 벤치는
지난 봄부터 내내 주워 들은 사연,
딱 그만큼을 토해내느라
갈바람을 등진 채 산통 중
목마를 타고 떠난 소녀와
백마를 타고 돌아온다던 소년이
빈 수레와 지팡이를 끌고
해거름 골목길을 스쳐 지나면
만추의 나무들은 여운이 길어
여백이 많은 편지를 쓰고
만추에 흠뻑 젖은 길손은
해 저문 줄 모르고 미소짓는다
그래, 낙엽이 좋은 걸 어쩌랴
깨금발로 단풍 밟기라도 할까나
흙에 덮혀 스러지고 재가 되어
한 포기 잡풀로 와도 좋은 것을
오늘 밤에는
홍조의 별똥별이 꼬리를 떼고
숙녀를 기다리던 벤치 위로
우수수 쏟아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