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기획, 장원의 시인편 -파랑새 단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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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기획, 장원의 시인편 -파랑새 단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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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의 시인



가을 같은 사람


        장원의


푸른 숲이 울긋불긋 고운 옷을 갈아입는다. 시원한 바람이 가을을 데리고 왔나 보다.


나는 지난 20년을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필리핀에서 살았다. 필리핀은 우기와 건기 즉 비가 오는 계절과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이 있다.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는 건기, 6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로 나뉜다.

이때는 하루에 한차례씩 소낙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며칠에서 몇 주 동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도 한다. 가장 더운 시기는 3월에서 5월이므로 학교는 4월 말이면 방학을 하고 6월 초에 개학을 한다.


나는 필리핀에서 국제학교를 운영하기에 한국 학생들의 여름과 겨울 방학 영어연수를 계획하며 봄과 가을에는 학부모들과의 만남을 위해 한국으로 출장을 온다. 5월과 10월 약 3주 동안은 전국으로 미팅 일정이 있어 바빴고 곧바로 필리핀으로 돌아갔으므로 계절이 흐르는 모습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지켜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모든 상황이 정지되어서 한국에 머물며 작년 8월 말부터 지금까지 사계절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그리고 다시 가을에 마주 서서 웃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상황이지만 사계절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 지나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온다.  지금 나의 어려운 시간들도 계절이 흐르듯이 지나갈 것이다. 감사하고 기쁜 일들을 바라보면 그것들로 마음이 가득 차 올라 하루하루 은혜로 사는 삶에 만족하게 된다. 다른 것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향유해야 하므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눈부신 햇살이 가을을 안고 들어온다. 거실 안이 가을빛으로 가득하다. 나도 가을 같은 사람이고 싶다


가을의 파란 하늘처럼

누군가에게

맑은 눈동자로 남았으면


상쾌한 바람처럼

누군가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으면


소박한 가을꽃처럼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으면


고통 속에 힘든 사람에게

뜨겁고 힘겨운 여름이 지나면

아름다운 열매가 열린다는 희망을 선물했으면


가을 햇살 같이 넉넉한 마음

가을꽃 같은 소박한 웃음

가을 하늘 같은 맑은 눈동자를 갖고 싶다


가을은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포근하게 안아주며 공감해 주는 엄마의 마음 같다. 가을에는 우리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저마다의 삶의 노래가 있다. 사랑, 이별, 고독, 외로움, 상처, 허무 그 어느 감정하나 가볍게 여기지 않고 감싸 안는다.

지금 나는 가을 한가운데 서 있다.

힘들고 뜨거웠던 여름을 시원한 바람으로 배웅하고 겨울의 길고 시린 계절의 문턱이 낯설지 않게 천천히 겨울의 길목으로 인도하는 가을의 이 섬세함이 참으로 고맙다.


11월 초에는 아이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지내다가 내년 봄에 돌아온다. 11월의 늦가을과 12월의 초겨울 그 상큼한 쌀쌀함을 함께 하지 못해 많이 아쉽다. 하지만 마음이 이끄는 사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사랑이기에,

그리로 가는 여정이 행복이기에...


神 앞에 조용히 홀로 서는 계절,

세상에 존재함으로 감사하는 날들,

울긋불긋 가을 옷을 갈아입는 숲에서

나도 한그루 가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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