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기획, 장원의 시인편 -파랑새 단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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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기획, 장원의 시인편 -파랑새 단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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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의 시인



소소한 행복


            장원의


하늘이 높고 푸르다.

비가 한차례 내리더니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은 후

열이 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나흘을 집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과 마트까지 걸어가려고 집을 나섰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날씨가 엊그제 같은데 스치는 바람은 이미 가을이다.

우리는 아파트 공원의 널찍한 길을 여유 있게 걸어갔다.


며칠 내린 비로 더욱 촉촉해진 공원의 나뭇잎들이 햇살과 장난을 하느라

서로 밀치고 흔들리며 파르르 떨고 있다.


걸으면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

멈추어 서야 보이는 작은 풀꽃,

마음이 머물러야 알게 되는 잔잔한 감동이

길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마트에서 몇 가지만 샀다.

고당도 바나나 한 손, 지퍼백, 원두커피,

식빵 그리고 햇살을 담았다는 예쁜 이름의

간장을 샀다. 간장은 사지 말았어야 했다.

하나를 사면 작은 간장도 보너스로 준다는 말에...

이런 것을 충동구매라고 하는가 보다.

짐을 들고 집까지 15분은 걸어가야

하는 것을 잠시 잊었다.


빈손으로 걸어서 마트에 왔기에

쓰레기봉투를 사서 물건들을 담았다.

커다란 간장병을 든 슬리퍼의 여인,

쓰레기봉투를 든 슬리퍼 신사,

멋진 커플이다.

마트 밖으로 나오니 쩡 하고 금이 갈듯

하늘이 맑고 투명해 마음까지 시원하다.


이사 갈 집이 멀리 올려다 보이는

길가 벤치에 앉아서 식빵 한 조각씩

꺼내어 먹었다.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지만 재미있고 즐겁다.


스치는 바람결에

살며시 눈을 감고 가을이 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엄마 손잡고

지나가는 어린 아기와

눈 맞추며 미소지을 수 있다면


초록 신호등이

깜박거려도 뛰어가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다.


남편은 더 들고 갈 수 있으니 간장병을

자꾸만 달라고 한다. 걷다 보면 이것도

나에겐 무거울 것이라며 빈손으로

걸으라 한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1.7ml의 간장병 손잡이를

제대로 잡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오늘 장을 본 물건들의 무게만큼

유쾌한 행복의 무게를 서로 나누어 들고 걸어갔다.

집으로, 가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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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중근 사진가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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