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와 함께하는 작가 노트, 김단 시인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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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와 함께하는 작가 노트, 김단 시인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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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단 시인



허수아비의 小考


                   김단


백색 우주를 떠도는 까만 곤충이 사각의 원고지에 갇혔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태초 이후에 감정이 생긴 건 분명한데 언어가 없어 정립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상대가 상대를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 한 곳에 응축된 채 감춰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윌터 스콧 경의 호수의 여인을 탐독하다가 경건함의 정수를 느낄 수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민달팽이 떠난 흔적을 보고서야 그 속도감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절이 계절을 넘는 밤

제목 없는 시를 쓰기 위함도 아닌데 쓰지 말라는 의미인지 마냥

악다구니를 써대는 귀뚜리의 항거가 유난히도 거칠게만 느껴진다.

방금 양어깨에서 무거운 하루를 내려놓는 순간

어둠은 아침나절의 싱그러움을 한 입 베어 문 양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달리기 시작한다.


*소고(小考): 완벽한 체계를 세우지 않은 가볍고 단편적인 고찰



♨작가노트♨

우리 인간은 언제부터 시를 썼을까.

아주 오래전임은 분명한데 이 얕은 지식으로는 쉬이 알아낼 수가 없다.

 하여,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따라가려 노력해보았지만

나는 빈 껍질만 두른 허수아비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허수아비의 그 생각을 정리해 끄적여보지만,

사각 틀 안에선 알아볼 수 없는 시어들만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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