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이 달의 Artem * 부싯돌 문학상 * 홍어 * 박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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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이 달의 Artem * 부싯돌 문학상 * 홍어 * 박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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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대상

#수필 부문
제2회 부싯돌 문학상

홍어

      박덕은 시인 수필가

홍어집에서 지인들과 만난다. 삭힌 홍어 냄새를 가까이에서 맡는다. 콧속이 바늘에 찔린 듯 맵다. 바다로 돌아갈 수 없는 서러움을 삭힐 대로 삭혀 톡 쏘는 냄새. 그 날것의 맛에 취해 내 혀를 바친다. 환장하게 찰진 홍어에는 몇 날의 아픔과 몇 밤의 울음이 들어있어 막걸리를 부른다. 끌고 온 파도 소리를 잘 삭힐수록 콧구멍 뻥뻥 뚫리는 맛이 일품이다.
 혼인한 지 예순 돌을 맞이하여 회혼식(回婚式)을 한 그도 홍어처럼 삶의 맛이 일품이었다. 평소 알음이 있는 터라 시골 구경도 할 겸 회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3남 4녀의 자식들이 한마음으로 이 예식을 준비했다고 했다.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나무가 묵은 시간을 삭힌 겹겹의 옹이를 껴입고 축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 옹이도 태풍과 가뭄과 눈보라로 상처받은 아픔을 자신의 마음 항아리에 담아 홍어처럼 삭히고 또 삭혔을 것이다. 사라진 가지와 잎사귀에서 생전의 기억처럼 바람이 일면 옹이는 홍어처럼 가슴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허공의 물살을 매만졌을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자 신랑이 입장하고 있었다. 세 명의 아들이 말을 만들어 아버지인 신랑을 태우고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신랑이 아직도 젊다 젊어' 하며, 신랑을 부추겨 주었다. 환하게 웃는 신랑의 눈가 주름에서 차마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던 그간의 아픔들이 흘러나와, 감잎은 툭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1914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당해 멀리 버마까지 끌려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탄약 운반하는 노무자로 생활하며 가까스로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다시 한국전쟁을 겪으며 독재정권 치하를 건너왔다. 그 캄캄한 시간의 항아리 안에 비참과 절망을 집어넣고 얼마나 많은 밤을 웅크렸을까. 낮과 밤이 기웃거리고 계절이 피었다 지는 동안, 그를 거쳐간 아픔들이 썩음과 삭힘의 어디쯤에서 서성거렸을 것이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자식들의 이름을 끌어안고 울음의 살점들을 삭히고 또 삭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똬리를 튼 서러움이 그를 집어삼키려고 대가리를 빳빳이 들었을 것이다.

숱하게 아픈 세월을 건너온 신랑이 예식에 따라 신부에게 절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신랑이 참말로 말을 잘 듣네'라며 깔깔댔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은 홍어 속살처럼 부끄러워 불그레해졌다.

 홍어집에 모인 지인들은 비릿한 바다 한 접시, 그 홍어에게 자신의 혀를 바치느라 바쁘다. 찰지게 엥기는 바다의 생이 혀끝에서 환해진다며 웃는다. 어쩌면 홍어는 항아리 안에서 삭히는 시간 끝에 더 홍어다워졌고, 회혼식의 그 신랑은 슬픔을 삭히고 끌어안으며 더 멋지게 아버지다워졌다. 어떤 지인은 마음의 항아리에 분노가 가득 고여 질겅질겅 화만 십으며 살아왔다고 하고, 또 어떤 지인은 억울함에 코가 꿰어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이런저런 어둑한 삶의 물살을 끌고 여기까지 온 우리는 이야기 항아리에 그간의 아픔과 불안한 내일과 저녁의 적막을 집어넣는다. 그 위에 지푸라기 반 모춤 같은 안부를 얹는다. 막걸리가 몇 순배 돌자 홍어가 달다. 톡 쏘는 밤의 쓸쓸함도 우걱우걱 십으니 단맛이 난다. 창밖은 잘 삭힌 달빛이 맛있게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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