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포랜컬쳐 이달의 Artem * 부싯돌 문학상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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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05:48
#시 부문
#1월 본상
한밤 서울역에는
박봉은
조명이 하나 둘 꺼져 가면
크고 작은 껍데기들이
여기 저기 자리잡기 시작한다
거적대기 깔기 시작하는 사람
신발 신은 채 돗자리 깔고 앉는 사람
찢어진 신문지를 바닥에 펴고 눕는 사람
그냥 맨바닥에 주저앉는 사람
앉을 자리 찾지 못해 마냥 두리번거리는 사람
한 쪽 구석에 서서 담배를 하염없이 빠는 사람
팔장을 낀 채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람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짜깁기를 해온 발자욱을
축 쳐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사람
생기발랄했던 연둣빛 추억을 내팽개치며
거칠고 긴 고통의 터널을 터벅터벅 걷는 사람
깊게 패인 상흔의 그림자 뒤로
타들어가듯 번지는 쓴미소를 퍼올리는 사람
초점 잃은 눈빛에 떠다니는 하품들을
히죽거리는 눈꺼풀로 끌어당기고 있는 사람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구석으로 걸어가
짜디짠 서러움을 콸콸 쏟아내고 있는 사람
따가운 시선으로 반죽된 대못을
사정없이 가슴 깊이 박아대는 사람
혀를 낼름거리며 구석 구석을 핥아대고 있는
허기진 상념처럼 이제는 서 있을 기력조차 없는 사람
탄식과 아우성 속에 긴 밤 저물어가고
이제 아침이 오면 지옥 같은 잔치는 끝날 거라 믿는 사람
발바닥에 붙어 버린 차거운 그리움 조각들을
맵고 따가운 시선들로 버무리는 사람
독사처럼 스며 들어오는 외로움에 물려
살을 찢는 둣한 고통으로 벌벌 떨고 있는 사람
자존심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허허 웃고 있는 사람
피눈물에 젖어 꺼져 버린 불씨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찢어진 종이 위에 뭔가를 긁적거리고 있는 사람
소름끼치게 야위어진 얼굴에
담쟁이넝쿨처럼 단단하게 달라 붙어 있는
새하얀 여린 꿈을 눈꼽처럼 달고 있는 사람
오래 전에 굳게 닫힌 가슴
그 틈새로 스며든 절망으로 녹이 슬어 있는 사람
누더기처럼 찢어지고 빛바랜 마음결로
밤새 온 가슴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
탄식과 아우성이 널브러진 바닥 위에 거적대기를 깔고
어둠의 꼬리를 붙잡고 서둘러 달려가는 사람
꽉 막혀 버린 하얀 시멘트 벽을 향해
기도하듯 고개를 숙인 채
혼자서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
어머니 손길처럼 다정한 별빛을
한 올 한 올 한데 모아
머리 위로 눈부시게 뿌려대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