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유민의 생활로 쓰는 시간詩間이 온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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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민의 생활로 쓰는 시간詩間이 온다. 4

포랜컬쳐 0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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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민군과 피아니스트 김송현님


내게 유민은 시인이다. -피아니스트 김송현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시인. 꽃이라기에는 투박하지만 숲이라기엔 여린,

그런 불안정함을 있는 힘껏 껴안고 봄을 향해 뛰어가는 시인.

유민과 통화를 마칠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쾌활한 봄날의 정경을 그려보게 된다.

과연 어떤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가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올리브 동산이 펼쳐져 있으려나?

비록 올리브가 나는 철은 봄이 아니지만, 나는 이것을 우리만의 시적 허용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작은 약속은 그와 내가 나아가야 할 멀고 험한 낭만으로 가는 길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테니.


사실 나는 유민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의 눈빛을,

코의 윤곽을, 입술의 촉감을, 손의 온도를 알지 못한다. 또한 상상하지도 못한다.

나는 이제껏 그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시와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그는 지리산 산골짜기와 김해를 오가며 시를 쓰는데 나는 경기도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미국 한복판에 나와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 그러나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걸었던 밤 전화기 너머로 전해져 오던

그 뜨겁고도 시린 숨소리 때문이고, 푸념이라기엔 지나치게 선명했던 그의 갈증 섞인 목소리 때문이고,

그가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내게 보내오는 짤막한 글귀들 때문이며,

자신은 시를 쓰고 싶어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쓸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그 절망감의 무게 때문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맛보았고,

그래서 시를 통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그는 그가 아무것도 알지 않아도 되었던 때로, 어떠한 아픔도 환멸도 폭력도 없는 나라로,

자신이 한때 지녔던 순진무구한 시선만을 손에 움켜쥐고서 그 영원한 봄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달리기를 있는 힘껏 응원하고 싶다. 그의 시를 읽고, 말하고, 노래하고 싶다.

비록 그 시가 오타와 사투리로 가득 차 있더라도,

그것이 내가 그를 이해하기로 결심한 이상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것만 같다.

그리고 언젠가 그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우선 두팔 벌려 크게 한번 안아주고 싶다.

그러고선 전에 약속한대로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맘껏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기왕이면 봄밤이였으면 좋겠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아 그래, 우리 유채밭을 보러 가자. 어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달뜨지 않아?


물론 그 모든 것에 앞서, 그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충분히 아팠으니까. 그리고 그는 나의 유일한 시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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