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와 함께하는 작가 노트, 안갑선 시인편 1

사람과 책

포랜컬쳐와 함께하는 작가 노트, 안갑선 시인편 1

소하 0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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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갑선 시인



가방


  안갑선


공원 벤치에 가방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가방 안에서는 음계에서 놀고 싶다고 연장들이 보채지만

가방은 옆에서 허공만 바라보며

한숨 쉬고 있는 남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가방에 의지한 채 평생을 살았던 남자가

이별을 준비 중인 것이다

블랙홀

인생에 이순 줄은 꽃 몽우리 맺기 시작할 때다

은비늘 팔딱팔딱 뛰는 아침 햇살 비벼 먹고

흰 구름 깃대에 꽂고 희망가 부르며

벽을 넘고 가시밭길 헤치며 내일로 가자

꽃길도 젊은 날에 일궈 놓은 것

시간 속에 떠내려 오는 지푸라기에 화들짝 놀라

넘어지는 이순 줄은 되지 말자

하루가 시간의 기둥에 기대에 쓰러지고

꼬물거리는 시곗바늘 위에서 춤사위 신명 나게 추어보자

삶이 가위에 잘리는 편집을 당하며

무대 뒤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지만

가방이 남자를 포근히 감싸 안고 다독여 주고 있다

남자는 가방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네가 내 삶의 주인이다



◎작가노트◎

그 남자 닉네임 우주블랙홀.

직업 음악 튜닝사

나이 60

나의 광물 고객이다.

하루는 댓글이 달렸다.

어디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한다.

예감이 틀려야 되는데 적중하고 말았다.

나이가 무슨 죄라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하나둘씩 떠나는 것을 본다.

나는 그 남자에게 무엇인가 꼭 해주고 싶었다.

그래 나는 시인 아닌가

그 남자도 이 시를 접하면서 다시 활력을 찾아

도시의 심장 속으로 뛰어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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