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권의 의령 이야기 7, 기네스북에 오른 의령 큰줄 땡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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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의 의령 이야기 7, 기네스북에 오른 의령 큰줄 땡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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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수필가



의령 큰줄땡기기는 2015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된 의령의 자랑거리다. 특히 2005년 만든 의령 큰 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줄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데 그 길이가 251m, 둘레가 6m, 무게가 무 려 54.5톤이다. 당시 사용했던 짚만 1,400동이었다. (그래서 의령 줄다 리기는 반드시 토속어 그대로 큰줄땡기기라고 불러야 한다.) 지금은 3년에 한 번씩 의병 제전의 부대행사로 열리지만 예전에는 정월대보름에 맞춰 풍농을 기원하고 마을의 재액을 멀리하기 위해 열 렸다. 의령 전체를 두 패로 나누어 두레패를 만들었는데 옛 관아터 인 군청 정문에서 보이는 남산으로 통하는 큰 길을 기준으로 서북쪽 의 산간지역을 물 위라 하여 백호라 칭하는 숫줄이고 남동쪽 강변에 위치한 곳은 물 아래라 하여 청룡이라 칭하는 암줄이었다. 청룡과 백 호로 이름 지은 이유는 물 위는 산 쪽이라 호랑이가 적합하고 물아래 1부 김정권의 의령이야기_43 는 강이 있어 청룡이라 했다고 한다. 물 위에 속한 마을은 중동 일부 와 서동, 서신, 가례면, 칠곡면, 화정면, 대의면, 합천군, 삼가군, 진양 군, 미천면 등이었고 물 아래는 중동 일부와 동동, 용덕면, 정곡면, 지 정면, 유곡면, 궁유면, 신반, 정암 등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물 아래에 살고 있더라도 태어난 곳이 물 위이면 물 위편이 되어야 하고 그 반대 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마을마다 자기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 만 예전에는 물 위편에서 하나의 깃발, 물 아랫마을에서 하나의 깃발 을 썼는데 물 위 마을은 흰 바탕에 백호를 그리고 동쪽을 정벌한다는 의미로 동정영기(東征令旗)라 썼고 물아래 마을은 흰 바탕에 청룡을 그리고 서쪽을 정벌한다는 의미로 서정영기(西征令旗)라 썼다. 의령 큰줄땡기기 44_김정권의 의령이야기 정월 초닷새 전까지 각 편에서 대표를 선출했는데 이를 모가비 또 는 모개비라고 불렀다. 모가비는 줄다리기를 총괄하는 총책임자이기 때문에 재력과 신망과 학식이 있는 지역 유지가 맡았다. 모가비 아래 로는 작은 모가비, 도유사, 유사 등의 각종 역할을 맡은 이들이 있어 모가비를 보좌하였다. 그 후에 임진왜란의 의병 군사 편제의 이름으 로 바뀌었는데 두령 1명, 영장과 도총이 각 1명, 전의, 선봉, 독전, 전 향, 수병 등 장수 5명, 그리고 각 장수 밑에 비장 1명씩을 두었다. 모가비 선정이 끝나면 줄 만들기가 본격화된다. 마을 사람들은 능 력껏 짚단을 기부했다. 살림이 넉넉한 사람은 많이 내고 어려운 사람 은 또 그 형편에 맞게 짚단을 기부했다. 줄 만들기는 원줄과 젓줄로 시작해서 암줄과 숫줄을 거는 순서로 이어진다. 두 줄을 끼우는 목비 녀는 반드시 남산의 소나무를 베어서 썼다. 남산은 의령의 상징적인 진산이다. 줄이 만들어지고 나면 앞놀이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가 줄다리기 의 시작이다. 모가비의 집 앞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줄을 당기 는 남산천으로 이동했다. 물 위 마을의 모가비는 신랑의 관복을 입고 소를 타고 행진하였고 물 아랫마을의 모가비는 신부 족두리를 갖추 어 입고 가마를 타고 남산천으로 이동했다. 줄다리기에 앞서 제물을 진설하고 고유제를 지내고 나면 줄머리를 결합하였다. 줄다리기는 시 작점에서 열 발자국 당겨오면 승리를 인정했는데 줄의 규모가 커지게 되자 줄을 당기기가 쉽지 않아 한 뼘 승부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1부 김정권의 의령이야기_45 줄다리기가 끝나면 뒷놀이다. 뒷놀이는 흰 상여놀이다. 상여에는 창호지를 붙이고 꽃 장식을 했다. 빈 상여 위에 모가비를 태우고 읍내 에서 길놀이를 한 뒤 모가비의 집에 들러 풍물을 치고 놀았다. 그 다 음에 상대편 지역에 상여를 메고 들어가 진 편을 놀리고 하였다. 줄다리기에서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암줄이 이기는 일이 다반사 다. 그러나 의령큰줄땡기기는 암줄이 이기도록 하지 않는다. 물아래 에서 이기면 비가 자주 오지 않고 물 위에서 이기면 비가 잘 온다고 믿었다. 예전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물위 사람들이 자굴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낼 정도로 물이 귀했다. 그래서 물위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기를 기원했고 물 아래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면 전답이 물에 잠기 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양편이 서로 이기기 위 의령 큰줄땡기기 46_김정권의 의령이야기 해 모든 노력을 동원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 남산 앞 줄땡기기 자리에 나갔던 기억을 떠 올려보면 남산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의령은 물론이고 함안과 합천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장사치들까지 합세해 전장터를 방 불케 했다. 각 마을에서 들고 나온 두레 깃발과 영기가 하늘을 뒤덮었 고 풍물패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줄땡기기가 열리지 않은 해가 있었는데 그 해 남산이 울었 다. 는 일화가 있다. 설마 산이 울기야 했겠냐마는 그만큼 의령 군민 의 아쉬움이 컸다는 뜻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줄땡기기 행사 는 1년 더 연기되었는데 부디2022년 의병제전 때는 우리 모두 한데 모 여 의령의 발전과 행복을 기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진짜 남산이 우 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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