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권의 의령 이야기 6, 구름도 쉬어가는 낙서면 오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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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의 의령 이야기 6, 구름도 쉬어가는 낙서면 오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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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수필가



경산김씨, 선산김씨, 벽진이씨, 담양전씨, 경주최씨를 포함하여 다 섯 성씨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정착했다“라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 오 운 마을이라 했는데 오늘은 낙서면 오운 마을을 가본다. 낙서면 오운 마을의 옛 담장은 국가등록문화재다. 2007년 문화재청이 향촌 마을 의 아름다움과 정서가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 돌담길 네 곳을 국가문 화재로 등록했는데 의령 오운 마을을 비롯해 정읍 상학마을, 여수 사 도·추도마을, 영암 죽정 마을이 그 곳이다. 또한 경남 도내에는 기존 의 산청 남사 마을과 단계마을, 거창 황산 마을을 포함해 문화재로 등 록된 옛 담장이 네 곳으로 늘어난 것이다. 오운(五雲)은 낙서면 전화리에 있는 행정리동 지명이다. 대덕산이 막아서 있어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지형이라 구름실, 굼실, 또는 운 곡(雲谷)으로 부르기도 했다. 전화리는 남쪽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창녕과 마주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삼동 한철을 빼고는 늘 강물이 범람 하는 지역이었다. 전화(全火)라는 지명도 물과 상극인 불을 취하여 재난 38_김정권의 의령이야기 에 대한 비보책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설득력이 있다. 오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표주박 모양의 분지로 바깥에 서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폐쇄적인 반촌의 전형 적인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은 그윽하다. 담 도 고샅도 마을을 담아 아득하고 고요하다. 마을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강씨와 전씨가 제일 먼저 입촌한 후 벽진이씨가 들어와 크게 번성했다. 오운 마을 초입에 는 벽진이씨 운봉공파의 재실인 운곡제(雲谷齎)가 있고 마을 오른편 안쪽에는 동원(東源) 이운모(李雲帽)가 일제 강점기에 세워 강학소로 사용한 의동정(宜東亭)과 칠우정(七友亭)이 남아 있어 벽진이씨의 가 세를 능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오운 마을의 담장은 흙돌담과 돌담이 1km, 탱자나무 울타리가 200m 정도 남아 있다. 마을 담은 주로 흙돌담으로 담양전씨 재실인 경모재(敬慕齋) 아래 몇 채에 오래된 담이 남아 있을 뿐 마을 서쪽 안 담은 이렇다 할 옛 담이 없다. 세월의 풍파와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군데군데 이가 빠지거나 닳아서 담장의 뿌리만 남아 있는가 하면 시멘트 블록으로 덧대어 놓은 곳도 허다하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산청 남사마을의 담장에 비하면 초라한 느낌 마저 들지만 오운 마을 흙돌담의 진짜 매력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아랫배 처지듯 배가 볼록 나온 못생긴 담에 있다. 한 치의 오차도 허 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네모반듯하게 정열 된 도시의 담벼락이 담의 본래 기능에 충실하게 사람의 마음조차 밀어낸다면 나는 숨길 것도 1부 김정권의 의령이야기_39 없다는 듯이 아랫배를 쑥 내밀고 있는 오운 마을의 흙돌담은 지나치 는 행인에게도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짓을 하고 있으니 모양만 담이 지 담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 있는 셈이다. 경계를 허무는 담, 그것이 오운 마을 흙돌담의 진짜 매력이다. 창녕에서 시작한 마늘과 양파 밭이 낙동강 따라 오운 마을까지 이 어져 있고 마을 앞 들에는 붉은 수수밭이 연상되는 옥수수밭이 물결 친다. 오운 마을을 올 때는 기왕이면 벚꽃 피는 봄날이나 단풍 직전의 가을날을 권한다. 새 생명이 움트고 다시 자리를 내어주고 돌아가는 모든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오운의 들판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시간도 공간도 담 없는 세상으로 이어 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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