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명상터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시끄러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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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명상터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시끄러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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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명상>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법칙-18 

가슴은 神의 연장이다 마음은 사회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가슴은 神의 연장이다. 마음을 인식하기 위해 판단이나 동일시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주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때 가슴의 동굴에 들어갈 수 있다. 머리는 노예이지만 가슴은 자유이다. 머리는 불행이지만 가슴은 최고 행복의 자리이다. 마음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마음을 앞문으로 밀어내면 뒷문으로 돌아 올 것이다. 마음을 통제하고 억누르기 한다면 마음은 무의식 속에 숨어서 작용한다. 무의식에 숨은 마음은 더 위험하다. 그 마음은 여전히 그대를 조정할 것이지만 그대는 그런 사실을 모른다. 마음은 미묘하여 포착하기 어려우며 억눌러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것이 과제이다. 그대가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지배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용히 가라앉은 마음을 통해서다. 먼저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라. 그 방법은 아무 판단없이 선악을 따지지 않고 조용히 주시하는 것이다. 에고는 항상 선하고 도덕적인 부분에 동일시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선한 부분과 악한 부분 둘 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는 선과 악을 초월한다. 다만 의식일 뿐,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관찰을 할 뿐이다. 동일시 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다면 서서히 마음은 가라앉는다. 그때 비로소 자기만의 주관이 생긴다. 86 어느 날엔가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면 그대는 주권을 가진 통치자가 된다.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돌연 그대는 가슴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대는 마음으로부터, 머리로부터 미끌어져 나온다. 그 다음에는 가슴의 동굴이 그대의 자리이다.* 


법칙-19 

진정한 앎은 행동을 초래한다 안다는 것, 즉 지식은 곧 행동을 의미한다. 진정한 앎은 행동을 초래한다. 이것이‘지식이 덕이다.’라는 의미이다. 어떤 질문을 들으면 가슴으로 듣지 못한다. 머리는 항상‘어떻게’를 묻는다. 머리에서 나오는 질문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 둣하지만 실상은 터무니없다. 머리는 항상 그렇다. 그러나 가슴은 결코 묻지 않는다. 가슴은 듣는 것과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가슴 안에서 듣는 것과 행동이 하나이다. 가슴은‘어떻게?’를 묻지 않는다. 가슴은 고유의 지성을 갖고 있다. 머리는 지적(intellectual)이지만 가슴은 지성(intelligence)적이다. 가슴으로 들어라. 그것은 깊은 사랑과 신뢰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을 통해 듣는 것은 ‘말하는 사람과 하나가 된 것처럼 듣는다.’는 의미이다. 말 뿐만 아니라 그 말이 전하는 의미와 향기를 인식한다. 의미의 향기는 미묘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가슴의 그물에만 포착된다. 머리로 이해할 때에는 이렇게 묻는다. ‘물론,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머리 안에서는 지식과 행동이 별개의 것이다. 가슴에서는 지식이 곧 행동이다. 소크라테스는‘지식이 덕이다.’라고 말한다. 88 그런데 역사를 통해 내려오면서 소크라테스를 이해되지 못했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조차 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가‘지식이 덕이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세상을 이해하는 순간 다르게는 행동할 수 없는 이해방식이 있다’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문이 있다는 것을 알 때 그대는 벽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것이다. ‘가슴이 중요하다는 것’을 되풀이 명심하라. 그대는 자꾸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가슴이 기쁨에 넘칠 때 그대의 삶은 분명히 성장하고 팽창하는 중이다. 그대의 의식은 더 명철해지고 그대의 지성은 구속에서 해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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