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명상터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시끄러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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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명상터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시끄러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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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명상>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법칙-11 

실재는 매 순간 고유하다 실재는 매 순간 고유하다. 실재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매 순간 새롭다. 실재는 갓 생긴 것이기에 그대가 직접 알아야 한다. 직접 아는 것 말고는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삶을 아는 유일한 길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수영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수영을 하는 것이다. 언어를 내려 놓아라. 마음을 거두어라. 긴장을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끝내 진리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생각은 모두 되풀이 되는 것이고 기계적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떤 것도 새롭지 않다. 생각은 낡고 썩은 것이다. 그것은 폐품 처리장이다. 마음은 그대로 하여금 기만하게 만든다. 마음은 그대가 지나치게 생각을 좋아하게 만든다. 마음은 말, 관념, 이념, 철학, 교리, 경전, 주의 등을 좋아하도록 만든다. 마음은 그대에게 실재를 주지 않는다. 오직 그림자만을 준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실재를 왜곡시킨다. 깨달은 사람은 말한다. 그냥 보라! 그냥 존재하라! 그러면 그대는 생각함이 없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함이 없는 생각이야말로 가치있는 생각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은 그저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다. 노자의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법칙-12 

신성은 그대의 본성이다 신성은 그대의 본성이다. 비록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그대는 이미 신성 그 자체이다. 그대는 다른 것일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그대에게 덧붙지 않아야 한다. 비록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을 지라도 그대는 이미 신성 그 자체이다. 그대는 다른 것일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그대에게 덧붙지 않아야 한다. 긍정적인 종교는 그대에게 도덕, 올바름, 명상, 기도 등.... 뭔가를 덧붙이려고 노력한다. 긍정적인 종교는 그대에게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말한다.부정적인 종교는 그대에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사실상 그대는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다. 종교란 본래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있었던 불멸의 그것을 알려는 노력일 뿐이다. 시작 없는 시작부터 끝없는 끝까지, 그대의 본래 자신은 늘 거기에 있다. 깨달은 사람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반대로 무언가를 잃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대의 공간은 지나치게 많은 것들로 뒤덮혀 있다. 부자는 너무도 가난하다. 빈 공간이 없어 가난하고 꽉 차 있어서 가난하다. 자신의 空을 모르기 때문에 가난하다. 空을 통해서 그대는 근원과 궁극을 얼핏 본다. 근원과 궁극은 같은 것이다.* 


법칙-13

몸은 내면 여행으로 가는 문이다 몸을 지켜보라! 그대의 몸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다. 몸은 순수하다. 몸은 결코 어떤 잘못도 하지 않는다. 존재계에서 더 순수한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몸은 너무나 순수하다. 그렇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몸은 그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른다는 사실이다. 몸은 하인이며 순종적이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른다. 몸을 지켜보라! 그대의 몸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다. 몸은 안과 밖의 양쪽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상이다. 생각과 행위는 그대 안에서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 첫 번째 단계/는 개념이 언어화 되지 않은 단계이다. 그것은 생각의 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미묘하다. 만약에 그 상태를 포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두 번째/는 말로 표현 된 단계이다. 느낌과 만나는 단계이다. 거기에서는 한 생각이 만들어진다. 생각이 물체화 되어 몸 전체에서 퍼진다. 몸 안에서 몸 밖으로 표출되려한다. 그때까지도 깨어있지 못하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세 번째/는 몸으로 표출된 단계이다. “ 분노‘라는 느낌을 예를 들면, 분노는 먼저 그대의 가장 깊숙한 속, 언어가 없는 막연한 곳에서 일어난다. 다음은 그것은 하나의 생각이 되기에 이른다. 그 다음에 생각이 몸 안으로 들어오고 아드레날린과 다른 독소들이 74 혈관으로 퍼진다. 그때도 그대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만일 분노에 의해 누군가를 때린다면 그때 그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까지 오게 되어 분노가 표출 된다면 그대의 무지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욕망이 아직 마음속에 의식화되지 않았을 때, 아직 언어가 되지 않고 단지 느낌으로만 있을 때, 무의식이 의식으로 들어 올리려 애쓰고 있을 때, 그때는 아주 간단하게 욕망을 멈출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에서 일이 일어날 때 붙잡아라! 그러면 아주 쉽다. 마치 씨앗을 쉽게 파낼 수 있는 것처럼 쉽다. 하지만 나무를 없애는 일은 어렵다. 바위는 밖에서 보인다. 달은 밖에서 보인다. 그대의 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 또한 밖에서만 보인다. 그러나 그대는 몸 밖에서도, 안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몸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몸은 내면 여행으로 가는 문이다. 몸을 지켜보고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들여다보자. 깨어있는 사람은 말한다. ‘고통과 아픔, 거의 지옥과 같은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고자 한다면 더욱 더 깨어있어야 한다.’깨어나면 깨어날수록 더 깊은 원인을 볼 수 있다. 원인을 깊이 알면 알수록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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