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명상터 2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시끄러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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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명상터 2 -무봉 박수형 최신간 명상집, 시끄러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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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는 철저하게 지금 여기에 관심이 있다 그대는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가? 깨달으려면 먼저, 존재에 쌓여있는 수많은 슬픔의 층들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곳엔 그대가 원치 않아서, 그것을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아서 억눌린 슬픔의 층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붓다는 그대의 모든 슬픔을 그대 앞에 가져온다. 붓다의 역할은 그대를 잠들거나 꿈꾸지 않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꿈은 때때로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꿈은 꿈이다. 달콤하건 쓰건, 설혹 그것이 대단히 즐거울지라도 꿈인 것이다. 시간의 낭비다. 진리는 어쩌면 그다지 즐겁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한번 그대가 진리를 보게 되면 삶은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지복의 차원이다. 다시 상기하라. 지복은 행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대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또 다시 오락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말하는 행복이란 쾌락이나 감각이나 흥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복스러움은 그 안에 평화와 침묵과 여여함, 평온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거기엔 고통도 없고 쾌락도 없다. 그것은 비이중성이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 슬픔을 통과해야 한다면 가치 있는 일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루어도 좋은 것이다. 그대가 깨달으려고 하는 것은 모든 가치를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이해력을 넘어서 있다. 붓다의 길은 깨어남의 길이다. 24 그러나 슬픔이 확연해져야 그대는 깨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깨어나고 싶겠는가? 그대는 그대의 슬픔, 그대의 지옥을 민감하게 느껴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죽음, 그대의 병듦을 자각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가 통과해 왔고 지금 통과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통과해야 할 모든 번뇌들을 자극해야 한다. 그 전체의 것이 확연해져야 한다. 인생 전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때, 오직 그때 그대의 에너지는 이제 다른 의미를 찾아봐야겠다는 하나의 초점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 이 인생은 실패했다. 이제 다른 인생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내 자신의 바깥에서 살아왔고, 그것은 슬픔과 번뇌뿐임을 알았다. 이제 나는 내면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때 인생의 진실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사람들은 미래를 모르는, 과거를 모르는, 궁극의 순간에 사는 붓다에게조차 내세를 부탁할 만큼 어리석다. 사람들은 내세의 행복을 원한다. 그들은 여기에서 깨닫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은 죽음 후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다. 붓다의 관심은 철저하게 지금 여기에 관심이 있다. 그는 그대가 지금 여기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바로 지금 그대가 내면을 느낄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곳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5 내면은 동일하다. 오직 외면만 다를 뿐이다. 한 사람은 외면적인 여자이고, 한 사람은 외면적인 남자이다. 내면적으로는 아무도 남자가 아니고 아무도 여자가 아니다. 내면에선 매일반이다. 심지어는 돌도, 내면은 언제나 동일하다. 오직 바깥 테두리만, 모양과 형태만 다르다. 내면은 神이다. 神은 모든 것의 내면이다. 당면한 문제, 지금 임박한 것들을 중요시하라. 당장 지금 여기로 들어오라. 그대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서, 그리고 보라. 그곳에서 그대가 알게 되는 것이 모든 문제들을 풀어 줄 것이다. 형이상학은 의미가 없다. 명상 하나면 충분하다. 붓다는 미래를 위해 그대를 도울 수 없다. 붓다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붓다에게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 뿐이다. 붓다는 과거에 대해서도 그대를 도울 수 없다. 과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체‘지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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