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식이형, 임상근 최신간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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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식이형, 임상근 최신간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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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근 시집 <창식이형> 최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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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식이형  


                                 -서평: 이동백 문학평론가


창식이 형 연작의 탄생은 이 삼행의 시에서 비롯되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면을 좀 더 좁히면 벌겋게 녹슬 어 추억의 기슭에 버러진 자전거가 된다.

구멍 난 운동화 로는 안막재 오르막길을 타고 넘을 수 없어,

끌고 오르다 가 미루나무 그늘에 들어가 고추장 섞어 흔들어

양은 도 시락을 비벼 나누어 먹던 기억이 시인의 시혼을 결정적으 로 자극한 것이다.

오십 년 전, 어느 날의 기억이 그 시대 에 체험한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들춰내어

연작을 쓰게 한 원동력으로 작동했으리라.

창식이 형은 작 가에게 브레인스토밍을 유도했다.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 은 추억을 대상으로 브레인스토밍하고 거기서 얻은 것 가 운데

시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추출 115 해서 시를 썼을 것이다.

그 요소들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단일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 가운데 창식이 형과의 추 억을 살펴보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아침에 비 오면 오십 원 들고 합승 타고 학교 갔다가 하교할 때

남은 돈 이십오 원으로 통 양파 몇 개에다 대파 반으로 뚝 잘라 넣고

청양고추 몇 개 잘라 넣어 연탄불로 끓인, 한나절 퉁퉁 불어 터진 어묵 몇 개 사먹고

그 어묵 국물 대여섯 그릇 퍼먹던 그 만홧가게 말이요

 - 창식이 형, 시적 화자의 창식이와의 추억은 대체로 30여 리를 자전 거 통학하던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비가 와서 자전거를 버리고 합승을 타고 등교하는 상황에서 등교할 때

합승 차비로 이십오 원을 쓰고 남은 이십오 원으로 어묵을 사 먹던 날을 들춰내고 있다.

한나절을 지내는 동안 퉁퉁 불어버린 어묵일망정 먹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 결국 차비까 지 털어 사 먹는다.

그것도 만홧가게에서 말이다.

아마 그 날 창식이 형과 시적 화자는 외상으로 만화를 빌려봤을 것이고,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걸어서 안막재를 넘어 귀 가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 창식이 형과 나눠 먹던 어묵의 실체를 무척이나 구체적으로 그린 것을 보면,

시적 화자는 이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하다.

이는 시적 화자와 창식이 형과는 특별할 관계였음을 실증하는 요소가 된다.

이쯤에서 시적 화자의 정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 적 화자를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는데, 시 속에서 말하는 이를 일컫는다.

시집을 관통하는 내용으로 볼 때, 특히 창 식이 형이란 구체적인 인물을

적시한 점을 고려하면 시적 화자는 시인 자신이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모 든 시편들의 시적 화자는 시인 임상근이 된다.

사십오 년 전 어느 봄날 선돌 배기 돌머리에서 한규 누나 책가방 손잡이에 돌돌 말아 다니던

 하얀 손수건 가져오면 이십 원 준다 하기에 한규 누나에게 얻어다 준 그 하얀 손수건 말입니다

- 창식이 형, 사십오 년 전의 청소년들이 겪은 사춘기의 한 스냅을 보여준 대목이다.

선망의 대상인 한규 누나의 책가방 손 잡이에 감긴 손수건이 탐이 난 창식이 형의 닦달에 못이겨

심부름 값 이십 원을 받고 손수건을 얻어다 준 일을 그 린 작품이다. 정황으로 봐서 시인은 수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뭉스럽게 능청을 떨 줄도 안다. ‘한규 누나가 한 말인데, 그때 그 손수건 못 이긴 척 사실은

나에게 준 거라 더군요’이라고 발설한 것을 보면 말이다.

창식이 형과의 추억은 이 외에도 ‘안막재를 넘다가

주 운 꿩알 열 개’, ‘참새 잡아 구워 먹던 일’과 같은 사연들에 실려 전해짐으로써 같은 시대를

산 세대들을 아련한 추억 의 공간으로 유도하는 힘으로 작용하다.

창식이 형과의 추억이 이렇듯 소중한 데에는 창식이 형이

‘아카시아 뿌 리 도끼로 잘라/ 내 지게 바소가리에 슬쩍 던지고/ 모른 체 했던 형’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시인이 추억한 시절은 대체로 사춘기적 증상이 한창 일 어나던 중학교 시절이다.

 이 시기에는 풋풋하지만, 서툴 고 치기 어린 사랑놀이를 통과 의례로 거치게 마련이다.

주황색 가방 자전거 앞에 걸고 우체부가 전해주던 난생처음 받아보는 여학생 편지 받아들고 겨울바람 불어대는

한길 가에서 남몰래 뜯어보고 떨어뜨린 눈물 - 창식이 형, 시인의 사춘기 시절에는

우체부가 짙은 주황색 가죽 가 방을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사랑에 눈뜰 시 기의 청춘에게는

그 우체부는 사랑의 메신저였다. 그 우 체부가 전해주는 편지를, 그것도 ‘겨울바람 불어대는 길 에서

남몰래 뜯어 읽고’ 시인은 ‘가슴이 벅찬 나머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고 만다.

지금은 낡아버렸지만, 이만큼 사실적인 이미지를 담은 사진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이 서 툰 사랑놀이에는 눈물이 배어 있어서 참 애틋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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