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신 시인의 최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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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 물들다>김태신 시인의 최신간

소하 0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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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 물들다


          김태신


백지에서 시작한다

밤새 쓰고 돌아보면 백지다

천인절벽, 벼랑 끝의 고요가 허공을 만진다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

인생을 가려 딛고 걸어온 고요의 아픈 자리가

새벽이면 눈먼 낙타울음을 운다


절절하게, 아득하게 걸어가야 할 삶의 허기

타는 입술로 채우고

사막을 걷는 늑대의 긴 그림자를 핥는

모래언덕의 바람처럼

캄캄한 심장을 향해 질주하는

비상의 약효를 되돌릴 수 있는

생경한 연민의 언어가 목마르다


가볍고 수월하게

낙하하는 석양의 잎처럼

악필로 써진 생의 이름이라 할지라도

무정과 허탈의 황폐한 백지에 묘비 하나 세우고

생을 묻을 수는 없을까

과연 그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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