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 조기조의 경제 칼럼 3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속풀이나 해장국으로 복국을 즐겨 먹는다. 요리사가 피를 뽑아 물에 잘 헹구어 해독을 한 복을
삶아 두었다가 국물에 삶은 복 덩어리를 뼈째 넣어주면 다시 끓여가며 먹는데 냄비 위에 생 미나리를 수북이 올려 숨이
다 죽기도 전에 초장에 찍어 먹는다. 그 맛이 후련하다. 복 껍질의 젤라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알코올을 잘
분해 할 것만 같다. 퍽퍽한 살은 있으니 먹기는 하지만 인기 없다. 실바람이 얼음 녹은 개울물을 헤적일 때 쯤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데 아직 뒷산엔 잔설이 남아 있는 겨울 끝자락의 미나리꽝에는 파랗게 자란 미나리를 채취하느라
시린 손발들이 굳어 마비 직전이다. 그래도 이때 가격이 좋으니 어디 쉽게 돈 버는 일이 있겠는가 싶어 참고 견딘다.
미나리는 무논에서 자란다. 미나리는 습지에서 비교적 잘 자라므로 키우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줄기를 잘라 내고 나면 또
거기서 자라므로 모내기처럼 또 파종하고 이식할 필요가 없다. 꽃이 피기는 하지만 씨를 심는 것 보다는 포기를 나누거나
줄기를 물에 담가 뿌리가 내리면 이식한다. 개울가에 저절로 자라는 미나리는 별로 크지 않으나 억세고 향이 강하여 따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논에 물을 대고 거름을 주며 길러낸다. 양산의 석남사 계곡이나 청도의 ‘한재’의
미나리는 유명하다. 산지에서 미나리에 삼겹살을 구워 소주와 곁들여 먹는 ‘미삼’불고기는 새로운 명물이다. 생 미나리를
초고추장에 무쳐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
사위는 아칸소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고 병아리 감별사로 벌어 보태는 딸을 위해 외손주를 봐주러 온 할머니가
미나리 씨를 가져와 개울가에 심는다. 이 할머니, 이역만리에 두고 온 고향과 친구들이 그리울 것이다. 신이 왜 가족을
만들었을까? 아니 왜 어머니를 만들었을까? 친정어머니가 우주(宇宙)가 되어 딸과 손주들과 딸의 남편을 보듬어주고 있다.
스토리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아이삭 정’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언어, 서로를 껴안고 사랑하는 언어를 배우고 그걸 전파하려고
했단다. 그래서 언어 때문에 미국영화가 아니라면 한국영화도 아니고 사랑의 영화라야 맞는 것 같다고.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와서 죽을 고생으로 잡초처럼, 억척같이 살아남는 사람들의 드라마, 대단한 스토리 맞다. 한번 배달에
2천 원 정도를 벌기위해 목숨을 걸고 쏜살같이 달려야 하는 이 땅의 ‘퀵배달’ 청춘들, 과로사가 한 둘이 아닌 택배 기사들, 닫지
못해 열어둔 가게의 주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개봉과 동시에 한국의 극장에 가서 보았다. 듬성듬성 앉은
극장 어디에서 이내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민망하고 죄송하여 당황했지만 두 시간을 집중시키도록 잡아두지 못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고 웅장하거나 화려한 배경음악에, 박진감으로 몰입시키던 액션 영화에 익숙한 어느
관객이 따분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처음 얼마간을 보면서 이 영화를 미리 다 매겼다. 기승전결의 기와 승을 보아하니
특별한 반전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끈기와 투지로 불굴의 삶을 감당해 낸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폄훼한다 할까 싶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느슨하지 않고 탄탄하게 잘 엮인 작품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까 싶다.
소자본으로 만든 (돈 적게 들인) 영화인 점을 감안하고 보아도 스토리 말고는 무얼 뛰어나다 할지 잘 모르겠다. 서너 개가 아닌
수십 개의 상복이 터졌다는 이 영화, 미나리는 1년 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되어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관객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동안 뭐하다가 이제야 상복이 터지고 붐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상을 타는 이유가 무엇일까?
선댄스 영화제는 독립영화제로 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국내와 국제부문으로 나누어 심사한다. 시나리오를 미리
심사하여 선정되면 재단에서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한다. 매년 1월의 마지막 목요일에 시작하여 열흘간 현지, 유타주
파크시티 등의 여러 극장에서 상영하는 선댄스 영화제는 이번에는 비대면과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사정인지라 온라인으로
보아야 했다. 안방에서 홈시어터를 준비했다면 이보다 더 안락하게 볼 수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여러 나라의 영화를 보면서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번역하고 자막을 올려도 어떻게 제 맛을 내겠는가 싶어 내가 안 할 걱정을 다 한다.
마을 앞에 있어서 온갖 하수가 흘러들어 벼농사를 짓기 어려운 곳이 미나리꽝이었다. 생활오수는 말할 것도 없고 길에
널브러진 개똥, 쇠똥이 비가 오면 흘러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자라는 것이 물에서 자라는 나리(백합)라는 뜻의 ‘물나리’인
미나리다. 알 듯 말 듯 하다. 이것저것 온갖 것을 다 받아주어 바다가 되었다는데 미나리꽝의 꽝을 수십억을 기대하다가
휴지가 되어버린 로또의 꽝에다 빗대어 본다. 미국땅이라고 미나리가 없겠는가? 사람들이 잘 먹지 않으니 몰랐을 것이다.
영어로 water dropwort인데 이제 Minari로 굳어질지 모르겠다. 장안의 화제가 아니라 지구촌에 화제를 일으키니 미나리꽝에
가서 삼겹살에 ‘쏘주’나 한 잔 할까 싶다. 칼럼리스트 조기조. 출: UTAH 코리안 타임즈 -202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