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리베르티스트의 리베르토, 아! 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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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용 리베르티스트의 리베르토, 아! 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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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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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문인협회김해지부 박경용 고문님과

사)경남민예총 안민선 사무처장님과 찰칵



박경용 프로필
호: 가인. 리베르티스트. 한국문인협회 김해지부 고문.
수필가. 가야스토리텔링 작가



뮤지컬
아! 남명(南冥)  트리트먼트

    아! 남명 (칼을 찬 선비 남명}      리브레티스트 박경용


                        1막
1장 김해  산해정(山海亭)
  22세때 결혼한 조식은 30세부터 48세까지 처가인 김해대동에서 지났다. 당시 사위의 처가살이는 흔한 일로 처가에서 기거하며 학문을 연구한다.

부유한 장인장모는 학자사위를 자랑으로 여겨 우대하며 조식이 원하는 데로 산해정을 짓고  연구하며 가르게 한다. 조식의 깊은 학문에 김대유 등

많은 학자들이 몰려온다. 대사헌 이언적의 천거로 헌릉 참봉에 임명 되었으나 거절하고 이후 생애  13번의 벼슬기회를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제자교육에만 힘쓴다. 조식은 근처에 두만강  백두산과 이름이 똑같은 백두산에 올라가  산위에 묻힌 바다조개를 보며 지형의 융기를  알게 된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마지막 충천함을 알아 정기를 받으며 학문과 실천을 중히 하는 경의정신을 다짐한다. 바다건너 대마도를 보면서

등산을 즐겼는데 48세 때  지리산 부근으로 옮긴 후  본격 등산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남명은 자주 산위에 올라 남쪽바다를 본다)


산해정에서  

십리밖에 왕이 태어난 곳 있어
긴 강물에 흐르는 한이 깊구나
구름은 누런 대마도에 떠 있고
산은 푸른 계림으로 뻗어 있네.      -조식-

(장인 장모 처  이웃의 합창)

 조개 껍질 들고(조식노래)
나는야 알겠도다 지각이 변동됨을
바다 밑 솟아올라 산정상 조개껍질
높은 산 가라앉아 심해를 이루도다  
벡두산 정기 내려 기운이 충천하니
이 기운 받아들여 내 학문 완성 하리.


 (조개껍질 들고 무용)


2장 가야고도 김해 인들의 씩씩하고 할기 찬 삶에 감명 받다.
  가야왕도 김해 인들의 풍부한 수산물과 농산물로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한양이나 다른 지역과 비교되는 자주적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아 굳건한 학문적 자세를 갖게 된다. 시장 통 모습 억센 여인들의 활동, 명호의 소금 생산, 고기잡이배들의

생선 판매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안주로 생선을 된장에 찍어 먹는 장면)

*왁자지껄한 장터풍경에서 삶과 정신적 에너지를 얻는다.


옛 가야 시장터엔 활기가 넘쳐나서
책속에 묻힌 선비 기운을 돋게 하네
일하는 여인네들 억새고 강한데다
장사꾼 외쳐대고 광대들  웃겨주네
(생선장수의 노래)
(광대의 노래) 한판 놀이와 재주


 3장  칼과 방울

남명은 평소 성성자(惺惺子)방울을 옆구리에 차고
경의검(敬義劍)도 지녔다. 경의검에다
내명자경 (內明者敬 )-내 안을 밝히는 것은 경이고
외단자의(外斷自義)-내 밖을 결단하는 것은 의이다.
장원한 제자 조원에게 칼자루에 쓰서 주다.


 (조식)
옆구리 차고 있는 성성자 방울소리
내 마음 일깨워서 바르게 살라하고
경의검 지닌 뜻은 안과 밖 지표 되어
선비의 가는 길에 이정표 되게 하리.


(제자들의 합창) 
성성자 방울 들고 소리와 함께 무용
<첨부 사진 참조>  --성성자 방울과 경의검
            (경의검 사진과 남명 초상화 옆구리에 성성자 방울)


(우리 무예 춤 )    

4장 해양교역 왕국 가야의 여유를 바탕 한 풍류문화가 많던 가야고도 김해, 정몽주, 김시습 등이 들려 시를 남긴 아름다운 함허정.

김해 부사의 초대로  함허정에 들렸다가 시 한수 짓고 부사 따라 기생촌 은광(恩光)으로 가다.
기생 국화의 유혹 물리치다.


(화려한 기생춤)

국화
남명님 오셨으니 국화의 기쁨이오
저 달빛 잔에 띄워 님에게 드리오니
학문에 지친심신 위로를 받으시고
시 한수 읊으시며 국화 향 젖어 소서.                         

                                            
남명

세상을 즐기라는 그대의 풍류타령
마음에 담은권유 내 어찌 모를 손가
학문과 제자교육 여념이 없는 이 몸
그대여 이해하게 선비의 가는 길을.


 - 인터미션 ---


1장 지리산 등반

  명종 3년 (1548)년 김해에서 고향 삼가로 돌아간다. 계부당과 뇌룡정 등 여러 학당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친다. 김해 백두대간 산정기에

매료되었던  남명은 지리산도 같은 정기가 충천함을 알고 등반에 열을 올리며 산정기  에너지를 학문에 접목시켜 경의 정신을 쌓는다.

진주 목사 김홍 자형 이공량 황강 이희안 등과 지리산 등반을 12번이나 한다.

  왜구의 침입을 경계하며 병술과 천문 지리 등에도 관심 갖고 익히고 가르친다. 그의 서거 20년 후 임진왜란아 터지자 제자 곽재우

정진홍등 50여명이  의병이 되어 공을 세운다.


조식          

지리산 천황봉에 다달아 올라보니
민족의 가진 기상 가슴에 벅차도다
천하의 선비들아 경의의 정신으로
산천의 기상 받아 세상을 헤쳐가세  

                  

등산객 일행

천황봉 올랐도다 지리산 올랐도다
하늘과 땅의 기운 용솟음 치는 도다
대장부 가슴속에 이 기운 가득 채워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위하리라.

                                                  
(지리산 천황봉 찬가  합창)
(무예 춤 군무)

 
2장  벼슬사양과 상소문
  단성현감을 제수 받았으나 사직소와 함께 절대 권력자에게 직소한다. 왕과 대비를 진노하게하고 중신들을 놀라게 한다. 전하의 국사가

 그릇된 지 오래임을 밝히고 대비는 궁궐 속의 한 과부일 뿐이며 전하는 선왕의 어린 자식일 뿐이라 헀다. 이로서 대비와 왕은 격노하여

극형을 내리려 하였고 훈측 등의 비난이 쏟아졌으나 너무 단최하면 임꺽정 문제 등 여론 악화와 언로가 막힌다는 좌의정 상진 등의

의견도 있고 하여 유야무야 넘어갔다.


 (상소문 읽고 난후 부르르 떨며)

문정왕후
임금을 능멸하고 왕후를 욕하다니
죽음을 각오하고 이른 글 올렸구나
남명을 붙들어서 질서를 세우시오
천하에 고얀 놈을 목 베어 벌하시오.


명종
무엄함 도를 넘어 하늘을 찌르도다
내려진 벼슬마저 거절도 몇 번째냐
대비를 과부라며 과인을 고아라니
당장에 목을 베어 극형에 처하시오.


신하들  
전하께 아뢰오니 진노를 풀어 소서
남명은 종묘사직 지키려 하는 일념
생명을 초개같이 상소를 올렸기에
전하의 홍복이며 언로의 소통이기
덕으로 다스리어 성은을 베푸소서


(신하들의 합창)

3장 퇴계와의 교유
  1501년생 동갑네기 퇴계와 조식은 당시 조선사회 성리학의 최고학자로서 쌍벽을 이룬다. 생전 만난 적은 없으나 학자로서의 서찰은

 여러 번 오갔다. 벼슬길에 오른 퇴계는 조식에게 벼슬을 권유했으나 거절한다. 서로는 학문적 견해가 다른 점도 있었으나 존중한다.

퇴계 70세에 서거하자 조식은 눈물을 지으며 나의 여생도 머지않았다고 했다. 2년 후 조식도 서거하고 생전에 주장한데로 비문에

 처사(處士)외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하였다. 남명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 칭호를 처사라고만 하라고 유언하다.


조식
퇴계는 나의동갑 유명을 달리했네
서로는 학문세계 같지는 않았지만
상호간 존중하며 서신이 잦았었지
내 마음 진심 담아 명복을 빌어주네.

남명 병환에 어의를 보냈으나 도착 전 운명하다.
운명순간 하늘저쪽 빛과 함께 선녀들의 합창소리

장하다 남명이여 그대의 경의정신
상제님 기쁘하사 천상 복 주시리니
지상의 실천고행 영복을 누리리라.

지상의 실천고행 영복을 누리리라    

                                           
(선녀들의 합창과 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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