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고등어 가족/장주호
G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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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4 14:31
이전의 삶이라면
분명 기요틴이 되었을
치밀하고도 잘 짜인 나무
그 반질반질한 재단 위에 올라선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입김의 뜨거움
오로지 죽어서 죽을 수 없는 존재만이
허공의 달과 눈을 맞출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가죽 채찍처럼 후려치던 짜디짠 미름소
이윽고 죽 찢어진다
구석구석 발려진다
각자의 영역을 나온 순간 비극
농축된 작은 금속들은 온몸의 살을 후벼 파는데
걸쭉한 피 한 줄기가 느껴지는 듯하여
구긴 초대장을 얼른 이마 위로 가져간다
요리를 기다리는 콩과 콩깍지 사이
아픈 멍을 스스로 눌러보는 것은 즐거운 일일까?
분쇄기들엔 의도가 있다는 것이 앵무새와는 다른 점
들어가는 입과 나가는 입을 구분할 수 없고
고등어의 가시는 꼭꼭 씨ㅂ을 수 있다
그 자잘함에 표본이 되지는 못한다
얼굴 그림자 위로 젓가락이 곡예비행을 한다
그 짭짤함에 도무지 끊지를 못한다
2025한라일보 신춘문예( 가작)당선작
♡시를 들여다 보다가
집안에서 생선 비린내가 풀풀거린다. 연탄불 위에서 보여지는
세상과 단절하고픈 고등어의 사그러진 눈동자가 애닯다. 지금
연탄불이 아니라 가스불이나 인덕션의 보이지 않는 불에서 조용히 익어가는 고등어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사실 별 맛이 없다. 장작불위에 올려진 번듯한 돌판. 그 돌판위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향연들 때문에 죽었지만 짭쪼름한 살아있음에
젓가락을 들이대고 그 비극에 대고 곡예비행을 하며 끊을 수
없는 맛에 감탄을 한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고등어 한 손 챙겨가야 쓰겄다.
분명 기요틴이 되었을
치밀하고도 잘 짜인 나무
그 반질반질한 재단 위에 올라선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입김의 뜨거움
오로지 죽어서 죽을 수 없는 존재만이
허공의 달과 눈을 맞출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가죽 채찍처럼 후려치던 짜디짠 미름소
이윽고 죽 찢어진다
구석구석 발려진다
각자의 영역을 나온 순간 비극
농축된 작은 금속들은 온몸의 살을 후벼 파는데
걸쭉한 피 한 줄기가 느껴지는 듯하여
구긴 초대장을 얼른 이마 위로 가져간다
요리를 기다리는 콩과 콩깍지 사이
아픈 멍을 스스로 눌러보는 것은 즐거운 일일까?
분쇄기들엔 의도가 있다는 것이 앵무새와는 다른 점
들어가는 입과 나가는 입을 구분할 수 없고
고등어의 가시는 꼭꼭 씨ㅂ을 수 있다
그 자잘함에 표본이 되지는 못한다
얼굴 그림자 위로 젓가락이 곡예비행을 한다
그 짭짤함에 도무지 끊지를 못한다
2025한라일보 신춘문예( 가작)당선작
♡시를 들여다 보다가
집안에서 생선 비린내가 풀풀거린다. 연탄불 위에서 보여지는
세상과 단절하고픈 고등어의 사그러진 눈동자가 애닯다. 지금
연탄불이 아니라 가스불이나 인덕션의 보이지 않는 불에서 조용히 익어가는 고등어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사실 별 맛이 없다. 장작불위에 올려진 번듯한 돌판. 그 돌판위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향연들 때문에 죽었지만 짭쪼름한 살아있음에
젓가락을 들이대고 그 비극에 대고 곡예비행을 하며 끊을 수
없는 맛에 감탄을 한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고등어 한 손 챙겨가야 쓰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