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아름다운 눈사람/이수빈
G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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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1 09:05
아름다운 눈사람/이수빈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
생님이 말씀하신다
운동장 위로 얇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
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
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
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모자를 벗는다 장갑은 잘 벗겨지
지 않는다 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
람 같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그리고 또 커
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
다 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
린다
(202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를 들여다 보다가
올 겨울들어 눈이 딱 세 번왔는데 올 때마다 큰 눈이다.당연히
눈사람의 탄생소식(?)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가 있었다.나이를
먹었어도 푸짐한 눈소식을 대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동경하던 눈사람을 기어코 만들어 내고 싶은 건 나만의 생각?
신춘문예에 관심을 갖고있는 1인으로서 연초에 쏟아지는 수상작들을 살피다가 마음이 따뜻해 지는 시를 발견했다.바로 이수빈시인의 <아름다운 눈사람>이다.학교 운동장에 눈이 쌓였다.아이들은 신이 났지만 어딘가 불편한 아이에게 선생님의 손길이 더해진다.그 덕에 이 아이는 근사한 눈사람을
만들었고 뿌듯하다.그러나 이내 녹아버린 운동장에서 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선생님을 보게된다.요즘처럼 교권이
땅바닥으로 추락한 현실 앞에서 온전치 않은 제자에게 사랑스러운 눈길과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는 선생님이라니...
오늘 아침의 날씨도 웬지 흐릿하다.흐릿함이 너무나 무거우면
가지고 있던 눈발들을 쏟아낼 터인데 그럴 수있는 날이다.차라
리 그냥 옴팡 쏟아내라! 속이,눈이,마음이 시원해지도록.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
생님이 말씀하신다
운동장 위로 얇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
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
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
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모자를 벗는다 장갑은 잘 벗겨지
지 않는다 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
람 같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그리고 또 커
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
다 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
린다
(202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를 들여다 보다가
올 겨울들어 눈이 딱 세 번왔는데 올 때마다 큰 눈이다.당연히
눈사람의 탄생소식(?)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가 있었다.나이를
먹었어도 푸짐한 눈소식을 대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동경하던 눈사람을 기어코 만들어 내고 싶은 건 나만의 생각?
신춘문예에 관심을 갖고있는 1인으로서 연초에 쏟아지는 수상작들을 살피다가 마음이 따뜻해 지는 시를 발견했다.바로 이수빈시인의 <아름다운 눈사람>이다.학교 운동장에 눈이 쌓였다.아이들은 신이 났지만 어딘가 불편한 아이에게 선생님의 손길이 더해진다.그 덕에 이 아이는 근사한 눈사람을
만들었고 뿌듯하다.그러나 이내 녹아버린 운동장에서 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선생님을 보게된다.요즘처럼 교권이
땅바닥으로 추락한 현실 앞에서 온전치 않은 제자에게 사랑스러운 눈길과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는 선생님이라니...
오늘 아침의 날씨도 웬지 흐릿하다.흐릿함이 너무나 무거우면
가지고 있던 눈발들을 쏟아낼 터인데 그럴 수있는 날이다.차라
리 그냥 옴팡 쏟아내라! 속이,눈이,마음이 시원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