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시인의 아픔과 빛깔의 크기는 미완 길
이대근 시인
이대근 그림. 미완성 作
공중전화
이대근
이른 새벽 공중전화는 띄엄띄엄 밤의 그림자 뒤에 서성이며
쇼케이스 속에 갇힌 숨죽인 울림을 기억하고
나처럼 청춘의 정분을 못 잊어 과거를 십고 있다
알 수 없으나 모질게 버텨낸 인연 하나 붙들고 있는 건
누군가의 오랜 기다림
그것은 아물지 못한 상처의 부스럼이었고
잊고 산 다툼이었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오래된 사랑은
오르내리는 열이라고 일러 주는데도 과거에 멈춰 짜증을 내면
겁에 질린 장승이 되어 오뉴월 사시나무처럼 떤다
고물 덩어리처럼 버티고 있는 무심함처럼
나는 정녕 무엇을 찾아 나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사시나무 아래 서성이는 그림자
기다림은 아무도 올 것 같지 않아도 거기 머물러야 한다
그럼 어때
이대근
달리기 출발 선상에 섰다
넘어지면 어쩌지
그러다 꼴찌면 어쩌지
오만 생각들로 꽉 찼다
꿈과 희망인 출발 선상
넘어지고
좀 늦어서 꼴찌면 또
어때
때론 거북이처럼
때론 오뚝이처럼
가끔은
이별 안고 눈물 뜨겁게 흘리고
그럼 어때
지나고 보면
감칠맛 나는 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니던가?
그림자
이대근
걸어온 길
마냥 따라만 왔다
지난 흔적들
정녕 있고 없을 뿐인데
고단한 아픔에도
마냥 곁에 머물 뿐인데
너였고 나였기에
다 갖지 못한 전부였어.
고백
이대근
걷기만 하면
달그림자 더불고
갈피 없는 생각 궁싯거리며 공연해도
바람결은 옷깃을 스치며 바다향 묻히고 갈 뿐인데
건기만 하면
뜨문뜨문 꺼내 든 조각난 기억들
발길에 걷어차이는 아픔이라 해도
잔잔한 물비늘 울림 그리움으로 떠 다닐 뿐인데
오늘은
애써지 않고도
그 방황 끝자락에 얹은 빈말같이
설령 사랑한다 사랑한다 해도 될 것 같은.
따뜻한 눈물
이대근
너무
보고싶어
너무
그리워
잘 있다고
하니
와락
눈물이 난다
약속
이대근
나중에나 있을 허망한 시제일 거야
기다림의 단절에 속고 속는 사랑의 결말처럼
어쩜 겨우 버티다 생긴 갈망의 늪같이
그것은 마치 텅 비고도 나에게 야망스럽게 안겨준
꿈으로 가득 찬 속절없는 기다림이었지
아니면 담보된 쓸모없는 사막에 기댄 어이없는 오아시스든가
놓지 않아도 가버리고야 말
야속하게도 절임 한 미련탱이들의 놀이마당에서나 있을
아마도 잡힐듯한 안개 같은 시제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