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꽃무늬 흉터/박 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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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꽃무늬 흉터/박 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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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흉터/박 지웅

서랍 안쪽에는 세상이 모르는 마을이 있다
속으로 밀어 넣은 독백들이 저희끼리 모여 사는 오지

 먼 쪽으로 가라앉은 적막에 새들도 얼씬하지 않는
바람마저 알아차리지 못한
그 외진 길에 편지 하나쯤 흘러들었을 것이다

서랍에 손을 넣으면
독백은 내 손을 잡고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종종 과일이 사라지는 것은 마
을에서 손이 올라온 것

 내가 먹은 그리움에는
왜 뼈가 나올까

 누군가 파먹은 사람의 안쪽
가만히 문지르면 흉터는 열린다, 서랍처럼

 가끔 그곳에서 곡소리가 난다
고백 하나가 숨을 거둔 것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 밖으로 발을 내민 그리움
뼈만 남은 글자들이 꽃상여에 실려 거처를 떠난다, 그
렇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흉터는 눈뜨고 죽은 글자들
모든 꽃은 죽어서 눈뜬 글자들이다

<나비 가면>박지웅/문학동네 출판/2021,8,16

♡시를 들여다 보다가

어느날 문득 책상서랍을 열었는데 숨어있는 편지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편지는 그리워만 하다가 부치지 못한 독백하나?
그 편지의 대상은 아마도 아랫마을 사는 순이였을까?
내 독백은 서랍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아랫마을 순이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소문을 타고 돌아다녔다.
소리내지 못하고 조용히 숨어있는 고백은 아리다 못해 흉터가
되고 푸짐했던 내용은 이제 깡말라 뼈가 드러날 정도가 되었다.
숨겨진 고백을 가끔씩 열어보며 그리워하던 순이가 꽃상여로
떠나던 날 서랍속에서 곡소리가 났고 곡소리와 함께 애처롭던
고백마저 더 이상 숨을 쉴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눈을 뜨고 죽은 그리움의 흉터였던 것이다.
이렇게 절절한 독백 하나쯤 서랍속에 숨겨놓고 있어야 하나?
내 서랍속은 너무나 깨끗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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