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야설/박 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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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야설/박 지웅

GOYA 0 412
♡야설/박 지웅

폭설이 술집을 덮치고 있다 창가에 등 굽히고
야설 을 읽던 사내 깜빡 잠든다
비틀거리는 사내를 야설이 조용히 따라나선다
사내는 이런 밤에 피해야 할 조언을 떠올린다
눈 속 을 오래 걷지 마라 미궁에 빠진다
길에 몸을 잘못 밀어 넣었다가는 결국 백발이 된 희망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
그러나 사내는 움직이는 흰 벽 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간다 어차피 아는 길은 없다, 세상은 단 한 번도 같은 길을
내준 적이 없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빠져나가는 세상 무너지고 쌓이는 무수한 사방을 보았다,
 그 어디에 의자를 놓고 정착할 수 있단 말인가
독백에 빠진 사내를 마중하는 것은 언제나 미노타 우로스의 입, 그 앞에 뼈다귀처럼 널린 봄날을 어떻게 추스리겠는가
사내는 몇 번 눈 위에 이름을 쓴 일이 있다
하늘은 몇 번 그 이름을 덮어 지운 적이 있다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삶이아니었으리라 알면서도 속고 또다시 눈 뜨고 꿈꾸는 것이 삶이라면
삶은 정말 나쁜 버릇이다
창가에 축 늘어진 사내를 어디론가 밀어붙이는 눈발들.
하늘은 오늘 하늘을 한 점도 남길 생각이 없다

-시집<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박 지웅/북인출판

♡시를 들여다 보다가

  제목이 야설이라고 해 놨기에 내용도 야한 썰정도로 생각했다.
들여다보니 夜雪이다.나이 육십에 야한 것을 떠 올리다니...
더위가 몰려올 싯점에 눈이야기라니...
그러나 한번쯤 땀흘리는 더위를 끌어 안은 채 앞이 안보이는 눈길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때가 있었기에 피서 차원에서 시를
음미해본다.시원하다.또는 답답하다.눈발을 맞으면서도 시인은
새하얗게 펼쳐지는 모르는 길을 떠올린다.세상은 단 한번도 같은길을 내준적이 없는 무심함에 삶이란 나쁜 버릇이라고
꼬집는다.내 의지가 아닌 삶의 시작점부터 희망이라는 봄날을
알면서도 속고 또 다시 눈뜨고 꿈꾸다 사라질 허상이라 깨우쳐
주는 쏟아지는 밤의 눈발들이여.
  오늘의 나는 창가에 축 늘어진 사내가 되어 하루종일의 하늘을
지워버리고 마는 하늘을 향해 무어라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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