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나무말뚝/마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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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巨詩記)-나무말뚝/마 경덕

GOYA 0 63

♡나무말뚝/마 경덕


지루한 생이다. 뿌리를 버리고 다시 몸통만으로 일어서다

니,


한 자리에 붙박인 평생의 불운을

누가 밧줄로 묶는가


죽어도 나무는 나무

갈매기 한 마리 말뚝에 비린 주둥이를 닦는다


생전에

새들의 의자노릇이나 하면서 살아온 내력이 전부였다


품어 기른 새들마저 허공의 것!

아무것도 묶어두지 못했다


떠나가는 뒤통수나 보면서 또 외발로 늙어갈 것이다


-시집 글러브 중독자J 애지시선 044,2012년


♡시를 들여다보다가 


  평생에 푸르름으로 우리 눈을 시원케 해 주던 나무가 일정한 크기로 잘려진 채 말뚝으로 변신했다.

  시인은 이 모양을 뿌리를 버리고 몸통만으로 일어섰다고 표현하였다.

  게다가 그 일어선 모양새를 밧줄로 견고히 묶어 불우한 운명을 고착화 시켰다고 역설하였다.

  심지어는 그렇게 묶여버린 몸통은 갈매기의  의자노릇과 갈매기의 주둥이를 닦아주는 보조기구로 전락했다는 슬픔을

던져주었다.

   사실 나무는 한창 푸른 색이었을 때에 그 새들의 보금자리였을 터.그렇게 품어주었던 새들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몸통만으

로는 그 새들에게 이제 더이상 보금자리는 아니다.

  그 새들이 잠시 의자로 앉아주어 고맙고 주둥이라도 문질러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다가 훌쩍 떠나가는 그들을 쳐다보며 늙어가는 것!


  내 나이 어느새 강건하면 여든이라는 숫자가 머지 않았다.

여태 지나온 날들이 푸른 청춘으로 신나게 달려왔던 시원한 모양새였다면 이제는 정년퇴직이라는 제도하에 뿌리를 버리고 

몸통만으로 일어선 나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나이와 년수(年數)라는 밧줄로 견고히 묶여서, 품어 주었던 새들이 가끔씩 찾아와 의자로 앉아주고 주둥이를 닦듯이 자식

들이나 제자,후배들이 간헐적으로 찾아와 얼굴도장이나 찍고 주머니에 용돈봉투를 찔러주는 모양과 닮았다.

  그리고는 그들의 떠나가는 뒷통수를 쳐다보며 붙잡을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 하며  늙어가는 것!


나무말뚝과 사람이 사는 모습이 꼭 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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