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님이 오신단다/함 석헌
♡님이 오신단다/함 석헌
님이 오신단다,
길 닦아 예비하자
내 집에 오시는 님을
날 보러 오시는 님을,
그저 어찌 맞느냐?
높은 것 낮추고
우므러진 것 돋우고
굽은 길을 곧게 하고
지저분한 것을 다 치워
님이 바로 오시도록 하자
님을 기다린다면서 그저 잤고나,
이것저것을 온 방안 허투루 늘어놓아
그저 앉으실 곳도 없이 했구나.
어서어서 모셔야 할 님
더러운 길에 왜 더듬게 하며,
맑고도 거룩하신 그의 몸을
헤뜨린 이 속에 어찌 맞을꼬?
오, 내 맘이 급해.
쓸자, 닦자, 고치자, 물을 뿌리자,
묵고묵고 앉고앉고
이 먼지를 다 어찌하노?
언제 이것을 아름다이 하노?
자리 위엔 무슨 때가 이리도 꼈느냐?
천정의 거미줄은 누가 치느냐?
이리도 더러운 줄을 나도 몰랐지.
뜰에는 무엇이 저리도 많아
발도 옮겨 놀 곳이 없고
앞길에는 돌이 드러나고
다리가 무너졌으니,
저거는 누가 놓아주느냐?
아이구 님이 오시네!
저기 벌써 오시네!
이를 이를 어찌노,
어딜 들어오시랄꼬
이 얼굴, 이 꼴, 이 손은, 아이!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자 닦자 하던 마음
그것조차 맘뿐이고
님이 손수 쓰시고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밝히자면서 못 밝힌 방
저절로 밝아지고,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
나중엔 맑아졌으니
내라곤 없소이다, 님 곁에만 사오리.
♡시를 들여다 보다가
사랑하는 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곧 오신다고 해서 기쁜 마음에 들떠서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해서 그 분이 오실 때 좋아라 하시라고
생각해보니 그보다 더 한 일이 없습니다.
마음이 급해요.
그런데 정작 미적거리다가 한 눈을 팔다가 그 분이 먼저 오시고야 말았습니다.
얼굴을 붉혀봤자 이 창피하고 송구한 마음 어찌할까요?
그런데 사랑과 은혜로 가득한 그 분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 분을 위해 치우려고 했던 더러움,청소할 분량을 나를 위해
오히려 쓸고 닦고 배려해 주십니다.
과연 그 분은 사랑이 가득하십니다.
이런 그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