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열애/이 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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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巨詩記)-열애/이 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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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熱愛)/이 화영


어느해인가

엄마가 보내준 김장 김치가 지독하게 매웠다

속앓이를 하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는 것은

시원하게 곰삭은 젓갈과 엄마의 손맛이었다


서울 나들이 오신 시아버님

허옇게 메마른 입술로

감기 걸려 입맛 없다며 시큰한 표정이더니

엄마의 매운 삶 켜켜이 다져 넣은 김치 속을

땀 흘리며 끼니마다 밥 한 공기 뚝딱 비우셨다


나흘째 되는 날

웃음 주름 깊게 지으며 현관 나서는 아버님

아가 안사돈 김치 덕에 감기 다 나았다 하셨다


아이들 방학하면 얼굴 볼란다고

불란서제 베레모 쓰고 서울 나들이 오시던 아버님

세월의 된서리 맞으시고 그 좋아하던 술 담배 뒤로하고

수 년째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안부 전화 드리면서 건강은 어떠신지 물었다

김장은 했냐 안 사돈은 건강하시고

어눌한 말투

엇갈리는 인사에

고시라진 배추 겉잎이 누룩처럼 떠왔다


ㅡ웹진 <님Nim>2022년 12월호


♡시를 들여다 보다가 


요즘 한창 김장에 열중할 때이다.

얼마전까지 김장은 동네의 잔치였다.

경임이네집에서 김장을 한다고 하면 숙희네도 승현이네도

유진이네도 상경이네도 팔을 걷어부치고 열일 제치고 달려가서 손을 보탰다.

엄마 손을 잡고 멀뚱히 쫒아간 숙희도 승현이도 유진이도 상경이도 한 입가득 배추쌈을 오물거리며 웃음꽃 활짝.

그랬었는데....

이제 우리들 웃음주름 깊게 지으며 현관 나서는 아버님이 되었고 곰삭은 젓갈과 얼큰한 손맛으로 김장을 담그는 안 사돈이 되었다.

이제 이러다가 세월의 된서리에 긴장해야 하고 어눌한 말투와 엇갈리는 인사에 누룩처럼 뜬 얼굴과 맞짱을 떠야한다.

아마도 이러한 맞짱이 곧 열애(熱愛)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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