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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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윤디바 0 263
저자 강종환

현대/기아 자동차 45년!

6반  강 종 환

      유 - 학창 시절
  일제시대 경남 함안 대산에서 10대 소년이 50원 들고 가출하여 걸어서 걸어서 마산 시내에 오니 창동 한복판에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시계방 가게 윈도우 앞에서 신기한 눈으로 시계를 보고 있으니 일본 사장이 들어오봐라해서 거기서 인연이 되어 시계방 청소하고 윈도우 딱고 시계 기술 배우면서 대한민국 최초 시계장인이 되었습니다.
  해방 후 27살에 최초로 “일신당” 간판을 걸고 1947년에 창업(75년역사)하셨다고 합니다 
바로 저의 부친이십니다.
그런데 부친의 유업은 동생에게 맡기고
나는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입사하여 40여년간 판매 실적으로 경남/대구/서울본부장(상무)로 퇴직하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지금도 영업은 하고 있다.

  부모님 덕택으로 별 어려움 없이 마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1973년도 대한민국에 둘밖에 없던 서울대, 건국대 미생물공학과로 최상기(교장) 이상필(박사} 윤병대(박사) 김장희(3.15기념사업회 회장, 사업) 등 6명의 마산고 출신이 대거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건국대 미생물공학과 학과장이 마산고 대 선배님의 영향 덕분이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잡상인 출입금지” -
  ROTC로 군에서 갓 제대한 후 짧은 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양복차림에 한 권의 노트와 포니와 마크Ⅳ 그라나다 등 카탈로그를 끼고 세일즈에 첫발을 내딛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군대에서 익힌 전술을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왔다고 믿고 있었다.
  내가 처음 지역 배정을 받은 곳은 남산 중턱의 속칭 해방촌이라고 불리는 주택개량 대상 지역이었다. 삼복더위에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자동차 보유현황과 가상고객을 찾노라면 어느새 저녁 무럽이 되곤 했다. 이러한 일과가 개미 챗바퀴 돌듯 며칠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끓어오르던 자부심도 식어가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서부사업소 강종환 이라고 적힌 조그마한 명함을 하루에 30장씩 이 집 저 집 건네줄 때의 기대감과 즐거움만으로는 자꾸만 커가는 좌절감이 메꾸어지지 않았다. 아침 미팅 직전에 걸려오는 전화중 나를 찾는 전화는 한 통도 없고 전부 선배들에게 오는 전화였다. 이렇게 하길 일주일 이제는 전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가을에 추수를 거둘려면 봄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라 하고 일러 준 선배님의 말을 되뇌이며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명함이 없으질 때까지 뿌리고 또 뿌리고 다녔다.

  열흘째 되는 날, 아침 미팅이 막 끝날 무렵에 “강종환씨 전화받으세요” 라는 여직원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고 “예 강종환 입니다. 거기가 어디죠?”하는 나의 수화내용을 듣고 동료들이 모두 웃었다.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해방촌을 향해 달렸다. 산중턱에 위치한 택시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청년이 포터 구입가격과 여러가지 판매조건을 물은 후에 계약을 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계약서를 쓰고 계약서에 도장도 받지않고 계약금만 쥐고 도망하다시피 달려운 순간에 나의 제1호 고객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때 그 순간의 기쁨은 나의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첫달 판매 댓수 4대. 원래 신입 원들은 3개월간 판매 할당 대수가 없는 것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더 이상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못할것 같아 가망 고객이 많은 도심지로(종로,을지로,퇴계로) 바꾸기로 했다. 무수한 빌딩 숲을 혜집고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부닥치고 또 부닥쳤다. 난생 처음보는 업체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잡상인 출입금지”란 표지가 붙어있으면 과감히 찟어버리고 사무실에 들어가 중역이나 사장님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난간은 있었다. 우선 세일즈맨에 대한 거부반응부터 먼저 일어났다. 그러나 시종일관 웃음으로 상대하고 카타로그를 하나씩 둘씩 정중히 전하는 습성이 몸에 배도록 반복하면서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갔다. 다음에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를 연상하면서 오늘을 이겨야만 했다. 우선 군경험을 살려 집에다 대형 서울지도에 상황판을 만들어 한 지역 한 지역 체크해나가기 시작했다.


3년후 전국 자동차 판매왕 등극 -
  한편 일단 우리 고객이 되면 에프터서비스에 각별희 신경을 써서 정성을 다했다. 그 결과 때로는 그 고객이 제2의 고객을 창출해주기도 했다. 반복된 방문, 때로는 밤 늦게 직접 가정방문까지 하여 나에게 주언진 여건을 최대한 동원했다. 일요일에 D/M (고객통신) 발송을 위해 출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나에게 한계가 왔다. 때때로 찾아오는 나태와 잡념이 나의 가장 큰 적이 되곤 했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릴 적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신과의 투쟁이라고 한다. 다방에서 쉬고 싶고 동료와 어울리고 싶은 심정이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세일즈는 패자 없는 승자만의 전쟁이어야 한다는 세일즈 철학.

  비오는 날 촉촉히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걸어도 보았다. 추운 겨울 빙판 위에 카타로그를 쏟아서 주변 사람들이 볼까봐 당황한 일도 있었다. 가망 고객이란 확신 후에 10번 인사차 방문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계약했을 때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모자랐던 점을 반성하며 산 교훈삼아 더욱 채칙질을 가했다. 지난 해의 경기불황으로 1/4분기부터 하향곡선을 그리던 자동차의 판매댓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회사에서는 비상체제에 돌입,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판매 켐페인을 폈다. 지난해의 HD56작전 켐페인 기간 동안 중국의 大字報처럼 대형 그래프 용지에 개개인의 판매 누적 댓수를 막대기로 표시하며 경쟁의식을 고취시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선배의 막대기 옆에 적힌 내 이름 위에는 이제 갓 돋아난 새싹처럼 하나의 줄이 공간을 체우고 있었다. 저 막대기의 길이를 한칸 한칸 채우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동분서주했다.
 


  화장지 도매상을 하는 영세업자가 중고 화물차를 구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새차 구입시 할부 조건의 유리함과 중고차의 수리비, 유지비를 설명하며 무려 6시간의 끈질긴 설득끝에 그렇게 강경하던 고객도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몇달전에 이루지 못한 어느 마나님과의 포니 계약을 위해 하루에 한 차례씩 열여섯번을 방문한 끝에 가까스로 계약을 체결했던 일, 어느 老 변호사의 마크5 계약시 할부금에 대한 공증 설정 문제 관계로 후퇴했다가 재차 들어가 계약했던 어처구니 없었던 일 등 일화도 많았다. 신규 방문 도중에 H법인 채사장님 책상위에 타사의 중형 승용자 2대를 결재되어 있는 것을 마크5 이코노미의 최대 장점인 경제성을 내세워 그 10자리에서 차종 변경에 성공했던 일 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통쾌함이 선하다.
  판매의 성공 요소는 50%의 준비와 40%의 땀, 그리고 10%의 행운이라고 한다. 아마도 나에게 이 10%는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낸 것 같다.  이런저런 연유로 그달엔 무려 12대를 출고 할 수 있었다.

  판매는 제2의 생산이다. 어려운 불황속에서도 판매와 생산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어느 누군가에 의해 계약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조금도 나 자신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세일즈의 세계는 냉혹하리만큼 무서운 승패의 갈림길이다. 끝없는 수요자 창출고 남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는 연구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네스북>기록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 세일즈왕 조 지라드(Joe Girad)나, 일본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신차 누적대수 3천대를 돌파한 시이나 야스후미(惟名保文) 같은 사나이도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부산에서의 인생 후반기 -
  이제 종심의 나이 60세를 지나 古稀를 바라보고 있는 시기에 이미 고인의 된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아직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또한 축복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올해는 마고졸업 50주년이 되면서 인생 70줄에 들어서는 해이다. 나에게 계묘년 토끼를 안겨주며 딱 일년만 살자고 찾아온 검은 피부의 토끼 계묘년 희망을 가지고 기대되는 이 년을 마음껏 사랑하며 행복을 깉이 인연으로 맺어 보고싶다.
그래서 2023년에는 가족 모두 건강과 웃음이 넘치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는 멋진 년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보세!!!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도움을 주고 특히 치매노인이 많이 늘어나고 있기에 이웃에 있는 요양센터를 기반으로 이웃돕기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 생의 불꽃을 피워보고 싶다.
함께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시대를 주름잡은 마산고 32회 동기들의 찬란한 내일을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2023년 1월에  一信 강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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