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일 수필가의 봉순이 누나 1

기타

이봉일 수필가의 봉순이 누나 1

포랜컬쳐 0 209

b377aa8a46101fd33472a2104103fbfd_1665252300_72.png

이봉일 수필가



봉순이 누나 1


        이봉일


버스는 늦가을의 비를 촉촉히 맞으며 곡성을 지나 광주를 향해 힘겹게 달려가고 있었다.

창밖은 검은 어두움으로 이미 변해 있었고 어느 낯선 마을의 정거장 앞을 지날 때면

마을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불빛들이 차창에 흘려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내게 왔는지 모른다.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차장 누나가 또 왔다.

"니 어쩔려고 그러는데?"

나는 아무 대꾸 없이 어둠 속을 뚫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자는 집으로 내려가는 막차도 아까 가불고 비까지 오는디 니 어쩔려고 그려냐고?

나가 니 땜시 못살것어야." 차장 누나. 그녀의 이름은 봉순이다.

 나와 국민학교때 같은 반이였던 이애순이의 언니다.

봉순이 누나는 우리가 국민학교 2학년때 6학년이였고 선도부 완장을 차고선

내 뒷자리에 앉은 그의 동생을 자주 찾아와서는 애순이와 내게 연필을 깎아서 주고 그랬었다.

 같은 마을엔 살지 않았지만 아버지 따라서 산넘어 누나네 집을 가 본 적이 있다.

그의 할머니가 우리 집 송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배냇 송아지를 키우셨다.

애순이는 노래를 참으로 잘 불렀었다.

그의 언니는 통통한 편이 였으나 애순이는 나무 막대기처럼 바짝 말랐었다.

풍금 소리에 맞춰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 밭에......"하며

 "꽃밭에란 동요를 두손을 가슴 아래에 가지련히 대고 노래하는 모습은

어미 잃은 아기 사슴이 엄마찾아 울고 있는 듯한 모습이였다.

엄마가 안 계셨기에 서울로 돈 벌려 가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가끔 구부정한 허리로 학교에 오셨다.

봉순이 누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했다.

서울에서 잠깐 있다가 먼 친척이 운영하는 광주로 내려와광성여객 차장이 되였단다.

학교 다닐 적엔 공부도 잘 하여 선생님들은 진학 못 한 봉순이 누나를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단다.

그 누나가 차장이 된 후 우리 마을 아이들은 너무 좋아라 하였다.

학교 앞을 지나갈 때면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태워 마을 마을에 내려주었다.

어떤 아이들은 그 누나를 먀냥 기다리다가 끝내 오지 않는 날에는

해가 저물고 있는 비포장 신잘로 길을 축 느려진 어깨를 하고선 터벅터벅 걸어야만 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