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근 시인의 추억을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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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근 시인의 추억을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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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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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소경


      유중근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바쁘셨다


벽장에 보관된 놋그릇을 꺼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연탄재 묻힌 볏짚으로 광을 내고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목욕 대야에

동생 둘과 나를 차례로 넣어

불린 때를 밀어주셨다

추석에는 부엌에서

설에는 큰방에서

"이 놈의 때 좀 봐라

아이고 팔이야" 하시면서

등짝을 내리치시던 그 손길


당신은 몸으로 하는 것은 일사천리였다

정작 걱정은 언제나 차례상 준비였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어떻게든

차례상은 빠진 적이 없었다

그 속사정이야 어떻든

명절이면 우리는 마냥 신이 났다


어른이 되고 보니

없는 살림에 그 많은 제사

얼마나 힘드셨을까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한다는

그 말 뜻을 이제는 더 잘 알겠다


어머니에게 받은 지극 정성도

세월 따라 소원해지고

윗대 제사는 합치고 성묘로 대신하자는 

육남매의 결정에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리하여도 울 어머니는

불효자인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실 것이다


등짝을 내리치시던

어머니의 그 사랑이 그리운 날


둥둥 떠돌던 땟국물을 보며

시시덕거리던 그 시절로 생떼부리며

한없이 돌아가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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