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과 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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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과 노랑이

소하 0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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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은 문학박사. 문학 평론가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멍멍멍 개 짖는 소리를 겹겹의 꽃잎으로 포갠 듯한 동백꽃이 이쁘다. 입맛 다시며 비린 바람을 발라먹고 햇살까지 한입에 받아먹은 동백꽃이 탐스럽다. ‘노랑아’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쪼르르 달려올 듯 동백꽃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키운 개 이름이 노랑이다. 공부하느라 마루에서 끙끙대고 있으면, 노랑이는 심심했는지 개밥그릇을 가지고 놀았다. 나는 구구단을 외우느라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노랑이는 이빨로 구구단을 잘도 외우며 개밥그릇 둘레를 자근자근 십으면서 놀고 있었다. 덧셈이나 곱셈은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노랑이는 앞발로 제 밥그릇을 차고 킁킁거리다가 물어뜯다가 으르렁거리며 밥그릇 산수 계산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렇게 노랑이가 밥그릇 놀이를 하는 날에는 유독 개밥그릇에 이빨 자국이 촘촘히 나 있어 얼마나 열심히 산수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노랑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였을까. 아기돼지가 노랑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노랑이는 밥그릇 공부를 뒤로한 채 여자친구인 아기돼지와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매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노랑이는 금장식 의관을 차려입은 듯 금빛 노을자락을 길게 늘어뜨리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깜짝 놀란 분꽃들이 빵빠레를 불며 환호해 주었다.

하루는 나와 노랑이와 아기돼지가 함께 놀러나갔다.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보더니 깔깔깔 웃으며 말을 건넸다.

“노랑이와 돼지를 결혼시킬 거냐?”

나는 부끄러워 도랑 쪽으로 도망갔다. 창피한 발이 공중을 점령한 바람을 깨뜨리며 총총총 앞서갔다. 아주머니들의 짓궂은 웃음이 계속 뒤따라와 말을 걸어와도 돌아보지 않았다.

노랑이와 나는 아기돼지와 함께한 이후로 더 친해졌다. 감정을 섞고 말을 섞고 일상을 섞으면서 친해져 갔다. 노랑이 앞에서는 굳이 감정의 앞면과 뒷면을 다르게 보일 필요가 없었다. 재채기처럼 튀어나온 울음을 일방적으로 편들어도 노랑이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울음의 발신지가 어딘지 묻지 않고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다.

어느 날, 쇠죽을 끓이기 위해 불을 때고 있는데, 노랑이가 마당 여기저기를 쏜살같이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집을 나가 버렸다. 노랑이가 쥐약을 먹었는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나는 엄마한테 야단맞아 늘 울던 장소인 대밭으로 갔다. 놀랍게도 그곳에 노랑이가 쓰러져 있었다. 대나무만 그 곁에서 범람하는 속울음을 어쩌지 못해 댓잎마다 목을 꺾으며 울고 있었다. 나는 노랑이를 끌어안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꺼이꺼이 울었다. 울음이 고인 곳마다 노랑이와의 추억이 있었고, 나는 그 추억 근처를 서성거렸지만 어디에서도 노랑이를 만날 수 없었다. 노랑이를 뒷산 동백나무 밑에 묻으면서 11살의 슬픔도 함께 묻었다.

눈이 내린다. 눈밭을 뛰어다니던 노랑이처럼 가볍게 제 몸을 가지 끝에 띄우는 동백꽃. 꼬리 흔들며 반가워하는 꽃빛이 붉다. 희미한 인기척에도 달려나오는 노랑이처럼 겨울 속에서 가장 먼저 눈뜬 동백꽃이 사랑스럽다. 언젠가 내 생의 심장이 멈추는 날, 나도 노랑이처럼 동백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출처: 전남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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