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시인의 그리운 날의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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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시인의 그리운 날의 언젠가는...

소하 0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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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진 시인


범부의 하루


              김재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사리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첫발이 그만큼 중요하고

기술 직종은 특히나 더 그러하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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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결혼 적령기가 30대 중반 전후로

늦어져 가고 있지만, 정년이 코앞인 필자는

20대 중반 전후로 결혼을 서둘렀던 세대였고

인기 장수 프로그램인 '전원일기'를 공감했던

그 시절에는 직업 선택에서 집안 맏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본다.


필자도 일명 '떴다방'이라는 정비업소를 시작하셨던

몇 해 전 돌연사로 작고하신 형님의 영향으로

문과를 지향했음에도 자연스럽게 정비업소에서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판금 일을 한동안 거치고

도색공으로 20여 년을 지독한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처자식을 건사하느라

쉽지 않은 여정들을 표독이 견뎌왔지 싶다.


오른손잡이로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탓에

좌우 대칭이 불균형으로 지속했을 것이라

군데군데 연골이 손상되고 디스크 증세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간다.

혹자는 직업병으로 산재처리를 받아보라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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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진 사진 作

쳇바퀴 돌듯한 빠듯한 일상에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인지도 모른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 찾기가 용이하듯

일과를 미리미리 체크하고 달곰한 모닝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보지만

하루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해서 스트레스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한다. 차분해야지

차분해야지 되뇌지만 급해지는 마음에

서두르게 되고 실수가 이어지는 늘 반복되는

일상이 번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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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공들에 심정이 지레짐작이 가듯이

기술이라는 게 조금씩은 개선이 된다지만

차량 10대를 도색하면 예술적으로 볼라치면

만족스러운 결과는 한두대에 불과하다.

작업자로서는 일종의 마술적인 눈속임 같은

거라서 자기만족이 극히 어렵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라치면 여지없이

술술 술 생각이 달덩이처럼 슬금슬금 오른다.

그렇다고 매번 단골집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지가 형님하고 따를 행색이니,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조촐한 저녁상에 반주를 곁들여

몇 잔 술기운에 하루의 시름을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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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한계치에 다다르는 체력도 그렇고

삶에 회의감도 겹쳐지는지, 가족 간의 대화도

소원해지고, 자식들에게는 무뚝뚝한 아버지로

새겨짐이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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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울타리에 가장으로

뼈저리게 견뎌온 세월 속을 자식들도 지나와보면

아버지에 무게감을 이해해 주리라 믿고, 해오름에

다시금 용기를 내고, 허름한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오늘도 번잡한 일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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