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리스트의 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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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칼럼리스트의 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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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오정희의 '유년의 뜰'에서 보는 전쟁의 아픔과 억지력


                                                       민병식 시인. 평론 칼럼리스트


  오정희(1947~  ) 서울 출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불의 강' '중국인 거리'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새' 등과

수필집으로 '내 마음의 무늬', 콩트집 '돼지꿈' '가을여자', 동화집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등이 있다.


  '유년의 뜰'은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피난지에서의 일가족이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떠나온 마을, 외눈박이 목수 집에서 세들어 살고 있는 가족,

아버지는 강제징병을 떠났고, 할머니, 어머니, 오빠들, 언니, 동생과 단칸 방에 살고 있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혼자 남은 엄마는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지만 생계를 위해 읍내 술집에서 일하며

엄마의 일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오빠와 끊임없이갈등 한다.

오빠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김없이 언니를 폭행하고 그럼에도

언니는 오빠 몰래 읍내 나들이를 한다. 오빠는 한창 먹성도 좋고,

사춘기라 세상에 관심이 많은 주인공의 언니에게 외출을 금지시키는 등 권력을 휘두른다.

엄마가 연락 없이 외박한 날, 오빠는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동안 맞기만 하던 언니가

반항하고 오빠는 방안의 거울을 깬다. 화류계 출신 외할머니가 엄마 없는 살림을 맡았는데 오빠를 다루는 일에 실패하거나 방조한다.

외할머니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며 주인공은 음식물을 탐하거나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쳐 사탕을 사먹는 것으로 그 긴장을 풀어간다.


  여름이 지나고 해가 바뀌고 주인공이 학교에 입학한다. 세 들어 사는 안집 딸 부네는 가출했다가

 아버지에서 붙잡혀 끌려오나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부네 아버지는 딸의 행실을 책임진다며

가부장제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며 부네 사후에 인근 동네 총각과 영혼 결혼식을 치뤄준다.

부네 가족은 딸들이 살고 있는 읍내로 이사를 가고 주인공의 가족도 방앗간 집으로 이사를 한다.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와 학교로 찾아왔다는 소식을 교장님에게서 들으면서 소설이 끝난다.


  이 작품은 ‘노랑 눈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의 눈에 비친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으로 아버지는 부재중이었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그 시대 어머니의 고통,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가족들의 분노, 슬픔,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인공은 식탐과 도벽이 있다. 위태로운 가족 관계 속에서 주인공은 그렇게 성장해간다.

화장을 하고 읍내로 일을 나가는 엄마, 남의 집 닭을 훔치는 할머니, 폭력을 일삼은 오빠,

자꾸 밖으로 나도는 언니, 식탐과 도벽이 있는 나,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않다.

한국 전쟁이라는 큰 소용돌이에 빠진 우리나라의 모습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 그 자체였다.


  전후 세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 들은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70~80대 한국전쟁 전후 세대가 대부분 그런 가부장적 굴레 속에서 혹독한 가난을 체험하며 살았을 전쟁의 피해자다.

이 시대의 유년은 따뜻한 가족이 있고, 아침에 일터에 나갔던 가족이 돌아와 함께 저녁을 맞이하는

그런 안락한 곳이라면 주인공 노랑 눈이에게 유년은 어떤 시간일까.

전쟁과 아버지의 부재가 겹쳐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 애쓰는 처절한 삶이 아니었을까.

  소설은 직접적으로 전쟁에 대해 한 줄도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피난민의 등장이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떤 전쟁 소설보다 무섭고 슬프다.

현대의 세상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실제로 있을법한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전쟁이 어떻게 한 가족을, 공동체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여실히 말해주는 작품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시킨다. 건물, 집, 삶의 터전 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없다.  오로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욕심을 채울뿐이다.

왜 죄 없는 국민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평화정착과 평화유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한국전쟁은 우리가 적을 막을 힘과 대비가 부족했다. 전쟁 억지력이란 말은 그대로 전쟁을 누르는 힘이다.

자주국방만이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힘이 부족하면 침략의 빌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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