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문학칼럼 27 - 하인리히 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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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문학칼럼 27 - 하인리히 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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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보는 언론과 독자의 역할
민병식

하인리히 뵐(1917-1985)는 독일 출생으로 쾰른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 군에 징집되어 6년간 프랑스, 소련 등 여러 전선에서 복무했다.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기차는 정확했다’를 시작으로, 참혹한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의 참상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고 1953년에 출간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비평가와 독자들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등의 작품을 집필했고,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를 넘어, 행동하는 지성이자 ‘국가의 양심’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27살의 젊은 여자인 카타리나 블룸은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정오, 권총으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살해한다. '차이퉁' 일간지에는 살인 사건이 대서특필된다. 사건이 전말은 이렇다. 카타리나는 볼터스하임 부인 집의 파티에 참여하여, 루트비히 괴텐을 처음 만나 춤을 춘다. 블룸은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함께 잠을 잔다. 다음 날 아침, 검사와 경찰들이 들이닥치는데, 괴텐은 없고 대신 블룸이 연행된다. 괴텐은 은행강도이며 살인범이라고 한다.

결혼 전 카타리나는 쿠이르 생활과학아카데미를 거쳐 가정부 생활을 했었다. 오빠인 쿠르트 블룸을 통해 방직공인 빌헬름 브레틀로와 결혼하지만 반 년 만에 가출하고 이혼한다. 이어 페너른 박사, 블로르나 박사 부부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이어간다.

차이퉁'지에 블룸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린다. '살인범 약혼녀 여전히 완강! 괴텐의 소재에 대해 언급 회피! 경찰 초비상!'의 헤드라인은 물론, 중병 중인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 부정적인 내용과 더불어 전 남편에게도 찾아가 불편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다. '차이퉁'의 블룸에 대한 확실하지 않은 추측성 기사는 계속된다. 블로르나의 친구이며 사업가이자 유력한 정치인인 슈트로입레더라는 인물은 평소 블룸에게 과한 애정 표현을 하는 한편 비싼 반지를 선물하고 편지도 보내며 그녀의 아파트까지 찾아가 별장 열쇠까지 건네는 등의 구애를 하지만 블룸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암 수술 후 안정의 취해야 하는 블룸의 엄마를 찾아간 퇴트게스 기자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잠입하여 인터뷰를 강행하지만, 결국 그것의 여파로 블룸의 어머니는 사망한다. 악의적으로 왜곡한 인터뷰 기사는 차이퉁에 낱낱이 기사화된 건 물론이다.

댄스파티에서 만난 블룸과 괴텐은 서로에게 한눈에 반해 춤은 물론 그날 밤까지 함께 한다. 블룸은 자신에게 탈영병이라 말한 괴텐에게 슈트로입레더가 준 별장 열쇠를 주며 아파트의 안전한 도주로까지 알려주며 별장에 숨으라고 한다. 하지만, 별장을 습격한 경찰에 의해 괴텐은 잡히고 가벼운 총상까지 입는다. 다음 날, 차이퉁지의 자매지인 주간지 '존탁스차이퉁' 1면에는 '사업가의 별장에 숨었던 카타라니 블룸의 다정한 연인'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무려 7, 8쪽에 걸친 방대한 기사가 실린다.

퇴트게스 기자는 블룸에게도 인터뷰 요청을 하였고, 그녀는 받아들인다.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온 퇴트게스는 현관 입구를 지나자마자 블룸에게 "섹스나 한탕하자'라는 말을 건넨다. 블룸이 권총으로 퇴트게스를 쏴버리고 곧바로 자수의 길을 택한다. .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눴고 그가 탈영병이라는 말에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를 도왔다. 그것이 블룸의 죄이다.

언론의 역할은 사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부당한 힘을 감시하며 잘못된 것을 고발하고 올바른 방향성 제시와 함께 바로잡으려는 것일 것이다. 선정적인 기사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조회 수의 경쟁에 매몰되고, 추측성 왜곡보도를 할 때 이미 사회를 밝히는 등불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언론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떤가. 사실 우리는 믿고 싶은 기사만 믿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의 입장과 입맛에 맞는 기사는 진리이고 나의 생각과 배치되는 기사를 보고 작성자를 기레기라고 부르며 온갖 욕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신의 진영 논리나 자기만의 생각을 옳다고 정신 승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언론 비판의 기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언론의 역기능을 다룬 소설이지만 그 역기능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 부분이 더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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