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정잔 -이종근 시인
철야 정진
이종근
차라리 한 입 슬며시 다물고 두 눈 꽉 감은 듯
저 산 중턱만큼의 삼거리로 쪼개진 산길은 더는 오르지 말 것을
해 뜰 녘, 이른 봄의 정적부터 음력 사월 초파일까지 쫓기듯
아늑한 불연(佛緣)으로 이어가는 이 가람(伽藍)에 올라와서는
호젓이 흐느끼는 범종, 목어, 운판, 법고와 풍경 소리에
아, 나는 속절없이 괴롭습니다
이끼 서럽게 핀 석등과 돌탑마다 일일이 내 그림자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 푹푹 얼룩진 번뇌만 아니라면
차마 엄두가 나지 않던 입산의 자괴감은
하염없이 촛불 타는 정념(情念)인 것을…….
해 질 녘, 모진 사월 중순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여유롭게
이 산사(山寺)의 불법승의 층계를 온전히 밟고서는
내 쓸쓸히 엉킨 속세를 깨는 목탁과 불경 소리에
아, 나는 더는 괴롭지 않았을 것을…….
내가 네 바퀴로 옭아 쥔 염주에 흙빛으로 얽힌 천겁(千劫) 업보가
고즈넉이 부엉이 우는 밤으로 격하게 울기에
내 두 발자국에 얽힌 화두와 내 두 손바닥에 긁힌 스바스티카의
그윽한 정분(情分)은 좀처럼 지우지 못할 삼보 귀의인 것을…….
<작가소개>
이종근 시인 (법명; 光文)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석사) 졸업함. 2016년 계간《미네르바》등단함.『5·18광주민주화운동40주년기념시집』,『부마민주항쟁의재조명과문학작품』,『부산김민부문학제』,『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문집』,『낙강시제(洛江詩祭)시선집』,『대구10월문학제』,『서울시(詩)-모두의시집』등과 동인지『공인인증시』등에 참여함. 그리고《서귀포문학작품공모전》,《박종철문학상》,《우리는통일일세대공모전-평화이음》,《부마민주항쟁문학창작공모전》,《빛고을문예백일장》,《국립임실호국원나라사랑시공모전》,《전국효석백일장》,《부천복사골백일장》,《제주문학관개관기념문예작품공모》등과 《문예바다》공모시 등에서 수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