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요산 김정한의 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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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요산 김정한의 수라도

제임스 0 1080
2021 요산김정한독후감경진대회 참방 수상작
민병식


수라도'는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이 1969년 ‘월간문학’에 발표한 중편 소설로,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6.25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낙동강 하류 어느 시골 양반 집안의 수난사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공간이 실제 공간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데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중 가장 명확하게 현존하는 문학의 현장이라고 한다. 수라도'는 '아수라도'의 준말로 불교에서 이르는 지옥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수라도' 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우리 민족의 근대사가 지옥 같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주인공 가야부인의 삶의 역정이 '수라도'로 나타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한국전정에 이르는 세대의 전환기에 전통 양반가인 허 진사 댁의 변모를 민족문제와 결부시킨 김정한 선생의 대표작이다. 한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안에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집약해서 말해주는 동시에 주인공 가야부인을 통해 질곡의 시대를 극복하는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품의 페미니즘 적 요소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이를 주목하여 언급하고 싶다. 첫째, 시숙의 죽음이후 기울어진 가세에서 스스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든 등 요즘으로 말하면 적극적인 커리어 여성으로서 일을 하려고 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일제의 공출시기에 몸종인 옥이가 위안부로 끌려가려 하자 이를 구해냈다는 점으로 이는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은 평등사상에 입각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셋째는 남성 중심의 유교적인 분위기를 탈피하여 종교에 대한 자유선택 및 시어머니 등에게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분이는 가야부인의 손녀이다. 분이는 할머니 가야부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할머니의 젊은 시절의 일들을 회상하고 있다. 분이는 할머니를 따라서 미륵당에 자주 가곤 했는데. 할머니는 늘 깨끗한 자태를 갖고 있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가야부인을 존경했다. 가야부인이 땅에 묻힌 미륵석불을 발견하여 이 미륵당을 짓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이가 할머니를 따르는 이유는 할머니의 생애가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가야부인과 그녀의 시댁은 많은 수난을 겪어왔었다. 가야부인이 시집 온 후 집안의 첫 번 째 커다란 수난이 일어나는데 시할아버지 허 진사의 죽음이다. 허 진사는 일제가 주는 합방 은사금을 거부하고 서간도로 갔지만, “무슨 강습소를 꾸몄다든가 독립 운동을 했다.”라는 명목으로 죽어서 돌아오게 된다. 두 번째 수난은 가야부인의 손아래 시숙인 밀양 양반이라는 사람이 일제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그런 환란의 가운데 가야부인은 종들도 내보내고 손수 모를 내고 길쌈도 하며 어렵게 이십여 년의 세월을 살았고, 육 남매의 어머니이고 며느리도 거느린 시어머니가 되었다.

시조부인 허 진사의 입젯날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쉬던 자리에서 가야부인은 돌부처의 정수리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시어머니에게 절을 세우자고 말을 하지만 시아버지 오봉선생이 반대한다. 오봉의 반대로 끙끙 앓던 가야부인은 몰래 괴질로 죽어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고명딸의 시체를 화장하고, 그녀의 사위인 박 서방의 도움을 받아 절을 짓기로 한다. 그렇게 가야부인이 집을 나와 사위의 집에 살면서 절을 짓는 동안, 그녀의 시아버지인 오봉이 한산도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국에 갇힌다. 삼 년 집행유예의 형을 받은 시아버지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죽게되는데 이 죽음이 그녀가 시집온 이후의 허 씨 가문의 세 번 째 비극이다. 오봉의 장례식에 참예한 창원 김 진사는 창씨 개명한 이와모토 참봉에게 욕을 하고, 오봉을 죽인 것은 고등계 경부보인 이와모토의 아들이라고 질타한다. 이에 속이 상한 이와모토는 병이 들었고, 이를 오봉의 혼신 때문이라고 여긴 그의 집안에서는 ‘천금새’라는 무당을 시켜서 굿을 하는데 자신의 신당 근처에 절을 짓던 가야부인에게 나쁜 감정을 가졌던 천금새는 절을 해하고자 하는 굿을 하였지만 실패하고 결국 이와모토 참봉은 죽고, 굿에 실패한 천금새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없어지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사람들에 대한 공출이 시작되었다. 이와모토 참봉의 조카였던 이와모토 구장의 주도하에 남자들은 탄광과 전쟁터로, 처녀들은 공장과 위안부로 끌려갔다. 가야부인의 몸종인 열아홉 살 난 옥이가 영장을 받게 되었다. 옥이는 끌려가던 날 박 서방에 의해 구출되고 그날 밤 이와모토 구장이 벼랑 끝 강물에 시체가 되어 떠 있는 채로 발견된다. 해방이 되었고 독립정부가 세워졌지만 별로 변한 것은 없었다. 징병을 피해 도주하였던 가야부인의 막내아들 석이가 돌아왔으나 농민조합을 만드니 마니 하면서 돌아다니기만 한다. 그녀의 남편은 통일되지 못한 것만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모토 참봉집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일제 시에 경부보를 지냈던 맏아들이 경찰간부가 되고 곧이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가야부인은 내색하지 않지만 어느덧 시어머니와 같이 천수를 읊으며 지낸다. 임종이 가까워진 가야부인은 침상에 누워 가끔씩 눈을 떠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전쟁의 포성을 들으며 세상을 하직한다. 작품은 시작과 끝이 가야부인의 임종 장면, 본문 부분이 손녀인 분이가 가야 부인의 행적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사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가야 부인의 태도는 그 시대의 변화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가정의 어려움 때문에 머슴 수도 줄이고 직접 모나 길쌈을 하는 모습은 전통적으로 살림만 했던 전형적인 전업주부로써의 여성상이 아닌 생업전선에 뛰어든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시아버지 오봉 선생과 종교 문제로 갈등을 보이는데, 다른 문제와 달리 결코 양보하지 않으며 집을 나가기까지 한다. 시아버지인 오봉 선생도 죽는 순간까지도 선비의 전형으로 유교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지만 가야 부인의 불심은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서 공자의 인이나 석가모니의 자비심은 근본에서 같으며, 임진왜란 당시 관군이 도피하는 상황에서도 승병이 고향을 지킨 사실을 들은 것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한 그녀가 ‘미륵당’이라는 공간을 만든 것은 집안이 갖은 고난을 당할 때 시어머니가 절에 가서 위안을 찾기를 바란 것도 있고, 괴로운 현실에 부대끼며 사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가야부인은 신여성이 가져야할 적극성과 주체성을 가진 여성이다.

‘수라도’는 중편의 분량이면서도 상당히 긴 시간을 배경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는데,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시기 까지 걸쳐 있다. 일제 때 징용 당한 대부분의 사람은 귀환하지 못하고 있으며, 돌아온 자는 거지나 신체적 장애를 갖고 돌아왔고, 정신대에 끌려간 여성들은 한 명도 귀환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일제의 합방 은사금을 받고도 양반 행세를 하던 이참봉의 아들은 해방 전에 고등계 경부보를 했는데도 해방 직후 잠시 숨어 있다가 다시 경찰 간부가 되고, 몇 해 후엔 작가의 표현대로 “어마어마하게도” 국회의원이 된다. 이에 더해져 멀리서 계속 들려오는 전쟁의 포성은 현실을 더욱 어둡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임종에 다다른 가야부인의 모습은 마지막 전쟁의 ‘포성’과 겹쳐져 약화된 극복 의지와 시대의 비극 상을 강하게 부각하고 있다.

‘수라도’에서 김정한 선생은 가야부인을 비롯한 그녀의 시댁 어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품에서 중요하게 볼 점은 가야부인의 뛰어난 여성 의식이다. 시아버지인 오봉의 유교와 며느리인 가야부인의 불교와의 갈등에서 결코 가야부인은 물러서지 않는다. 수난과 질곡의 세월을 짊어지고 살아온 가야부인은 한 집안의 가장 못지않은 리더십과 부처의 인격으로 고난은 인내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이는 가야부인의 임종자리에 있던 외손녀 분이에게도 연결성을 갖는다. 바로 가야부인의 의지와 고난 극복의 정신이 분이 에게 전해지는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유교적 양반 주의를 탈피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시대에 일제에 대한 저항과 신분 타파, 남성과 동등한 여성으로써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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