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시인의 살았기에 하늘을 본다

기타

이대근 시인의 살았기에 하늘을 본다

서랑 0 414

9aa27d96a209f3d937593e0c9689d1ee_1628747787_9.png


글과 함께 하는 행복 


                           이대근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니다.

그래서 내 글은 남들의 감성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에 의존하며 깊이 있는 글, 무게감 있는 글, 내 것이고 싶은 글이고 싶다.

너무 직선적이지는 않으나 유연하며 에둘러 쓰거나 굳이 시어를 들이대지 않는 글이고 싶다.

진득한 듯이, 의미심장한 듯이, 결연한 듯이,

삶에 짓눌리고 삶에 힘들어 나를 갉아먹는 고통같이,

사랑에 멍들고 뼈저린 이별 뒤에 겨우 몸 가누듯이, 아파한 사람의 깊이처럼 그런 글이고 싶다.

글은 마음의 투영이며 인생, 삶의 본 모습과도 같아 모순투성이이면서도 절제와

고집스러운 성찰을 해내는 마음속의 울부짖음이고도 싶다.

그래서 무게감 있는 글이고 싶은 거다.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니길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누구를, 독자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삶도 남을 의식하는 듯하지만,

어찌 보면 각자의 삶을, 각자의 손을 흔들며 살고 있지 않을까?

이렇듯이 나 또한 내 글이 되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이러한 글이 차마 사치스러운 글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쓰면 분명 자신의 글이 아님은 물론 손끝에서 나온 글이 된다.

손끝에서 나온 글은 다소 달콤할지는 모르나 그 달콤함이

자칫 과다 영양으로 비실비실한 내실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나온 글도 마찬가지겠기에 깊은 가슴에서 나온 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하지만 쉬운 것만은 아니다. 머리를 짜내어도 도무지 감성이 젖지 않고 깊이가 없는,

가슴이 없는 글이 될 때가 많다. 아니 대부분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힘이 든다.

지금이, 더 성숙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어떻게 하면 덜 고민할까 하는 안타까움에 놓여있을 때다.


문득 길을 가다가,

잠자리에 들 때나 혼자 있을 때 뭔가 잡히는 게 있을 때가 있다.

가만히 있어도 메아리처럼 울림이 있어 내어놓으면 그것이 때론 내 글처럼 태어난다.

미숙아라 해도 내 것이다.

미쳐 쓸 준비가 안 되어 아쉽게도 사산하고 마는 안타까움이 있을 때가 많지만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귀하고 멋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남다른 표현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글이어야 한다.

얼마나 힘들고 신중해야 할까.

어쩌다 받아든 책 한 권을 수박 겉핥기처럼 읽고 말 때가 있고

그냥 받아들고 와서는 서재 책장에 넣어버릴 때도 있다.

어느 친구는 책을 받고는 읽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고백처럼 하는 얘기를 했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읽고 싶어서 산 책과는 다름이 분명할진대 어쩌겠는가.

수없이 많은 책 중에는 그 책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듯이 아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머쓱하게 책장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이는 필요 때문에, 때론 읽고 싶어서 읽는 책들과는 달리

그냥 흘깃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책들이 때론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처럼 되다가

언젠가 정리의 대상이 되어 아파트 폐지 더미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더 진중하고 좋은 글의 필요성을 더 갖게 되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그냥 그런 글들보다 뭔가 읽고 나서 얘기가 되고,

아! 하는 느낌이 있는 글, 한 번 더 보고 싶은 그러한 글을 위한 푸닥거리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더 고민할 때가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부지런해지는 것이니 더 부지런 하자.

더 고민하자. 그리고 더 배우자.

이렇게 행복한 고민이 하나 더 생긴 새해 아침이다.

9aa27d96a209f3d937593e0c9689d1ee_1628748211_77.png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