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외딴 유치원/반칠환
G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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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09:33
아랫목에 밥 묻어 놨다ㅡ
어머니, 품 팔러 새벽 이슬 차며 나가시고
막내야, 집 잘 봐라
형, 누나 학교 가고 나면 어린 나 아버지와 집 지키네
산지기 외딴집 여름해 길고,
놀아줄 친구조차 없었지만 나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네
외양간엔 무섭지만 형아 같은 중송아지,
마루 밑에 양은냄빈 왈칵 물어도 내 손은 잘근 씨ㅂ는 검줄이,
타작 끝난 콩섶으로 들락거리던 복실꼬리 줄다람쥐,
엄마처럼 엉덩이 푸짐한 암탉도 한 마리 있었다네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ㅡ
원생은 나 하나뿐인 외딴 유치원, 솔뫼 고개 우리 집
아니 아니, 나 말고도 봄에 한배 내린 병아리 떼가 있었네
그렇지만 다섯살배기 나보다 훨씬 재빠르고 약았다네
병아리 쫓아, 다람쥐 쫓아 텃밭 빠대다보면,
아버지 부르시네
풍으로 떨던 아버지,
마당에 비친 처마 그림자 내다보고 점심 먹자 하시네
해가 높아졌네, 저 해 기울면 엄마가 오시겠지
- 반칠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시와시학사, 2001)
♡시를 들여다 보다가
산지기 외딴집에 기거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내 어릴적 기억처럼 또렷하다. 아랫목에 묻어둔 아버지와 내 밥때문일까? 사실 노동력의 강도로 봐서는 엄마보다 아버지인데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죄다 병들어 아프다. 있으나 마나한 아버지와는 별개로 나홀로 집을 지키는 모양새다.연말에 즐기는 영화 <나홀로 집에>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영화에서는 재물에 욕심을 품은 악당들과의 한바탕,그러나 산골에서는 송아지와 검줄이 그리고 줄다람쥐와
암탉들이 그 대상들이다. 별거 없다.가만히만 있어도 된다.
오죽하면 그 어린 병아리까지 빠릿한 행위로 심심함을 위로해
줄까나? 번잡하지 않지만,고요할 것 같지만 정작 시간 가는 줄 모르기에 금새 해 기울어 엄마가 오실 때가 코 앞에서 아른거린다. 혹시 엄마 손에 간식이라도 들려 있을지도...
어머니, 품 팔러 새벽 이슬 차며 나가시고
막내야, 집 잘 봐라
형, 누나 학교 가고 나면 어린 나 아버지와 집 지키네
산지기 외딴집 여름해 길고,
놀아줄 친구조차 없었지만 나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네
외양간엔 무섭지만 형아 같은 중송아지,
마루 밑에 양은냄빈 왈칵 물어도 내 손은 잘근 씨ㅂ는 검줄이,
타작 끝난 콩섶으로 들락거리던 복실꼬리 줄다람쥐,
엄마처럼 엉덩이 푸짐한 암탉도 한 마리 있었다네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ㅡ
원생은 나 하나뿐인 외딴 유치원, 솔뫼 고개 우리 집
아니 아니, 나 말고도 봄에 한배 내린 병아리 떼가 있었네
그렇지만 다섯살배기 나보다 훨씬 재빠르고 약았다네
병아리 쫓아, 다람쥐 쫓아 텃밭 빠대다보면,
아버지 부르시네
풍으로 떨던 아버지,
마당에 비친 처마 그림자 내다보고 점심 먹자 하시네
해가 높아졌네, 저 해 기울면 엄마가 오시겠지
- 반칠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시와시학사, 2001)
♡시를 들여다 보다가
산지기 외딴집에 기거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내 어릴적 기억처럼 또렷하다. 아랫목에 묻어둔 아버지와 내 밥때문일까? 사실 노동력의 강도로 봐서는 엄마보다 아버지인데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죄다 병들어 아프다. 있으나 마나한 아버지와는 별개로 나홀로 집을 지키는 모양새다.연말에 즐기는 영화 <나홀로 집에>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영화에서는 재물에 욕심을 품은 악당들과의 한바탕,그러나 산골에서는 송아지와 검줄이 그리고 줄다람쥐와
암탉들이 그 대상들이다. 별거 없다.가만히만 있어도 된다.
오죽하면 그 어린 병아리까지 빠릿한 행위로 심심함을 위로해
줄까나? 번잡하지 않지만,고요할 것 같지만 정작 시간 가는 줄 모르기에 금새 해 기울어 엄마가 오실 때가 코 앞에서 아른거린다. 혹시 엄마 손에 간식이라도 들려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