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6

수필, 소설

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6

소하 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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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선 사진 作



산채비빔밥


            박금선


오후 2시다.

점심때가 늦었다.


조카가

빵집을 개업해

동생이랑 다녀오는 길이다.


휴게소에

들러 식당으로 갔다. 


먼저

자동 메뉴판에

먹고 싶은 메뉴를 누르고 계산부터 했다.


그리고

번호표를 들고

주방 천장 쪽의 하얀 불빛 화면을 보고

순서가 나오길  기다렸다.


한식은

한식부로 양식은 양식부로 따로

분리돼 있었다.


혼자 왔으면

밥도 한 그릇 못 먹을 판이다.

순서가 어렵다.


휴게소나

식당 같은 데 가면

자동으로 주문하는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


지금도

공과금이나 세금을 자동으로

납부하는 기계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민원창구로 간다.


자동 계산하는 방법은 늘

서툴고 두렵다.


얼마 전

서울에 갔을 때도 메뉴 주문하는 법을 몰라 테이블에서 서빙이

오기를 한참을 기다린 적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좀 수월해진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앉을 자리가 없다.


주방에는

하얀 모자를  높게 쓴 주방장들이

왔다 갔다. 참 바쁘다.


모자 높이를

좀 낮추면 안 될까?


불이 난다.


육개장을 먹는 사람

가락국수를 먹는 사람

비빔밥을 먹는 사람 

다 달랐다. 


유부 가락국수를 시켰고 

내 동생은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딩동 하고 벨이 울린다.


내가 시킨

국수가 먼저 나왔다. 


동생은

15분쯤 기다리니 비빔밥이 나왔다. 


퉤퉤,

동생이 밥숟가락을 테이블에 반쯤 던지다시피 땡그랑 하고

놓았다.


비빔밥이 시었다. 

나물 여덟 가지를 하나하나

따로 들어내어 조사가 들어갔다. 도라지가 시었다. 


동생은

당장 비빔밥을 들고 주방 쪽으로 갔다.


과감하고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더니 육개장을 한 그릇 들고 왔다.


육개장은

맛도 좋고 양도 많다.

아까 그 비빔밥은 양도 적었다.


돈 8,000원을 대접에 담아도

그 비빔밥 양보다는 훨씬 많을 듯싶었다.


맛도 중요하지만  나는 양이

푸짐하게 많은 걸 좋아한다.


내 동생은 4살 아래다.

참 당차다.

언니한테 한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행동을 한다.


난 그렇게 못한다.

늘 동생 말에 따르는 편이다.


비빔밥이랑

육개장을 맞바꾼 셈이다.

웃음이 났다.


나는

시었거나 말았거나 

꾸역꾸역 끝까지 퍼먹는다. 

그 정도 쉰 거는

괜찮지 싶었다.


공짜 밥 한 그릇을 더 먹는 기분이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야,

아까 그 비빔밥

안 시었더라도 영 아니더라 오늘 우리 돈 8,000원 벌인 셈이다."


동생이 합죽한 턱을 추어올리며  찢어진 작은 눈을 흘기면 말한다.


" 참 내

언가는 당연한 걸

가지고 촌스럽기는

꼭 옛날 사람 같다."


무시하는

말투로 핀잔을 준다.


한번씩 속상할 때가 많지만

속으로 삭이고 만다.


8,000원에

2가지 맛을 보았으니 길 가다가 돈

8,000원을 주운 셈이다.


오늘은 공짜 밥 한 그릇에

촌 아지매가 우습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9월의 오후다.


태양도

겸연쩍은 얼굴로 두 볼을 붉히며 배시시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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